무등산 역사유래
2017.2.26 나사모산우회 무등산 시산제에 앞서 무등산 역사유래 책을 보며 몇 자 적어본다.
이 책 무등산은 .조선대 이사장이기도 한 박선홍님이 팔순에 지은 책이다.
책제목은 무등산의 유래.전설과 경관 무등산이다 다지리출판사
(무등이란 더할 나위가 없어 견줄만한 상대가 없다는 뜻이다)
1. 무등산은 백제 이전까지는 무돌이나 무당산으로 일컬었다.
통일 신라 때는 무돌의 이두음인 무진악 또는 무악으로 표기하다가 고려 때부터 서석산이라는 별칭과 함께 무등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2.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무등산 서쪽 양지바른 언덕에 돌기둥 수십 개가 즐비하게 서 있는데 높이가 가히 백척이 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서석이라 했다고 서석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3. 새인봉 유래
정상의 바윗덩이가 임금의 옥새와 같다하여 새인봉이라 한다.
4. 서석대 1100m 유래
서석대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어서
저녁 노을이 물들 때 햇빛이 반사되면 수정처럼 빛을 발하면서 반짝거리기 때문에 서석대라 한다.
5. 입석대 바위기둥 모양을 띠는 이유. 박승필교수, 지형학 전공
펄팔 끊는 용암이 지표상에서 지표상에서 급속히 식으면 수축현상이 일어나고 냉각면이 수직방향으로 갈라지는 주상절리가 나타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직방향의 틈에 비나 눈으로 물이 스며들게 되고 스며든 물은 겨울에 얼어 팽창하면서 바위틈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어느 새 용암덩어리는 독립된 돌기둥 여러 개가 늘어선 모양으로 쪼개지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입석대는 9천만년 전에 솟아 올라 억겁의 풍상을 겪는 동안 쪼개지고 깍이고 눕고 하여 오늘의 장엄한 모습을 이루었다.
6. 중머리재 유래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것을 스님의 머리에 비유하여 중머리재라 한다.
7. 너릿재 유래
갑오동학농민 전쟁 때 동학농민군 포로들이 일본군에 의해 무더기로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너릿재를 일명 널재라고 하는데 이 때 처형된 동학농민군들의 수많은 널이 너릿재를 지난 데서 연유한 말이라고 한다.
8. 꼬막재
원래 부근에 꼬막같은 자갈이 무수히 깔려 있어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9. 천제단.
새인봉에서 동쪽으로 건너다보이는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건너편에 있는 새인봉이 사모를 쓰고 천재단을 향하여 엎드려 있는 형상으로 군신봉조형 산세를 이루고 있다.
천제단도 원래는 오르기 힘든 입석대에 있었으나 점차 인가에 가까운 곳으로 내려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