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17-11권) 다산 정약용 평전

카프리2 2017. 7. 4. 18:05

■ 책을 읽게 된 배경 : 17.6.25 아내와 남양주 정약용 생가를 방문 후에

  - 이 평전은 몇 달 전에 읽고 싶어 산 책이었음.


■ 읽고 난 소감

  - 10년전에 목민심서 3권을 읽고...조선왕조실록에서 정약용 편을 여러 번 읽었다.

  - 또 수년 전에 박석무 전 의원이 우리 회사 대강당에서 2시간 동안 다산에 대해 강의를 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 이 책을 읽어 보니..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소설은 소설인가 보다.

  - 다규멘터리에 입각해서 작성한 정약용의 일대기를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 650페이지가 넘는 대작을 정신없이 읽었다.

 

■ 개 요

 

 1. 읽은날짜 : 2017. 06. 21 - 07. 04(14일)

 2. 글쓴이/출판사/페이지수 : 박석무 / 민음사 / 664페이지

 

 3. 책 제목 : 다산 정약용 평전

 4. 목 차

   1부 암행어사 출두요

    2부 학문과 정치의 바탕을 다지다.

    3부 정조를 보필하여 정치의 일선에 서다

    4부 유배지의 저술 생활

    5부 학문과 인생을 정리하다. 

 

 

 

 

■ 책을 읽은 소감

 

- 먼저, 조만간 다산 초당을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다산초당에 가면 가이드가 많이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나의 정약용에 대한 지식과

  가이드의 설명을 비교하여..다음 정약용에 대한 책을 더 읽고 싶다.

 

- 2년전 같다...등산을 하며 만덕산까지 갔었다. 

   이번에 다산 초당을 가면 백련사와 만덕산 등 다산의 손때가 묻은 곳도 가고

   주막도 들리고 싶다.

 

- 다산은 500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붓으로...

   그게 가능한 일일까? 사람은 신비의 연속이다. 사람이 책을 쓰려면 항아리에 물이 철철 넘쳐야 책이 써진다.

   다산은 소년시절부터 성균관시절, 28세 대과에 합격할 때 까지 독서로 항아리를 채웠다.

 

- 과거에 합격하고는 정조로부터, 독서 토론을 했다. 사헌부 관리, 승지를 역임하며 전통 학문을 읽혔다.

   천주교로 연류되어 곡산부사로 옮겨 근무하며..목민관의 지식을 읽혔다.

 

- 그러나 1799년 영의정 체재공이 별세, 1800년 정조의 별세로 노론에 밀려...장지(포항)와 강진으로 귀향을 떠난다.

   비록 귀향 신세였자만 비로소 책을 본격적으로 읽고 저술 활동을 한다.

 

- 1818년 귀향이 끝난 18년 동안 500권의 책을 저술했다.

  혜장스님과 만남, 18제자를 양성했다.

 

- 위기는 기회인 것 같다. 18년동안 독서에 전념할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최고의 지식인으로 거듭났다.

 

    

[정약용 연보 정리]

 

1. 1762년 영조 38년, 1세

 - 6월 16일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4남 1녀 중 4남으로 출생

 

2. 1768년 영조 44년, 7세

 - 천연두를 앓아 그 흔적으로 오른쪽 눈썹이 세 갈래로 나누어지자 스스로 호를 삼미자라 칭함

 

3. 1770년 영조 47년, 9세

 -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다. 큰 형 정약현의 부인인 이씨에게 보살핌을 받다가, 다산 나이 12세 때 들어온 서모 김씨에게 의지하다.

 

4. 1776년 영조 52년, 15세

 - 관례를 치르고 풍산 홍씨 홍화보의 딸과 결혼하여 서울 생활을 시작하다.

 

5. 1777년 정조 1년, 16세

성호 이익의 유고를 보고 사숙하다.

현감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임소인 전라도 화순으로 내려가다.

 

6. 1783년 정조 7년, 22세

성균관에 들어가다. 초시에 합격.

9월 12일에 큰아들 학연이 태어나다.

 

7. 1786년 정조 10년, 25세

별시 초시에 합격.

7월 29일 둘째 아들 학유가 태어나다.

 

8. 1789년 정조 13년, 28세

1월 반제에 합격하고, 전시에 나아가 수석으로 급제하다.

 

9. 1791년 정조 15년, 30세

겨울에 호남에서 진산 사건이 일어남

 

10. 1792년 정조 16년, 31세

진주 목사를 지내던 아버지가 임소에서 세상을 떠나다.

 

11. 1795년 정조 19년, 34세

병조참의에 제수

주문보 입국 사건으로 금정 찰방으로 좌천

 

12. 1796년 정조 20년, 35세

좌부승지에 오름

 

13. 1797년 정조 21년 36세

좌부승지를 사퇴하는 변병사동부승지소를 올리다.

곡산 부사에 제수. 겨울에 마과회통 12권을 완성

 

14. 1799년 정조 23년, 38세

형조 참의 제수.

6월, 권철신,정약전 등과 관련하여 무고를 받자 사형조참의소를 올려 제직을 허락받고 벼슬길에서 멀어지다.

 

15. 1800년 정조 24년, 39세

6월 28일 정조가 승하하다.

고향 소내로 돌아와 여유당이라는 당호를 내걸고 여유당기를 쓰다.

 

16. 1801년 순조 1년, 40세

2월, 장기(포항)로 유배, 둘째 형 약전은 신지도로 유배, 셋째 형 약종은 처형 당함

10월 황사영백서 사건으로 투옥

11월, 다산은 강진현으로, 형 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됨

 

17. 1805년 순조 5년, 44세

겨울에 보은산방에서 지내며, 혜장과 함께 주역 연구에 몰두

 

18. 1808년 순조 8년, 47세

봄에 다산으로 옮겨 거처하다.

 

19. 1816년 순조 16년, 55세

둘째 형 손암 정약전의 부음을 듣다.

 

20. 1817년 순조 17년, 56세

상의절요를 완성하다. 후에 경세유표로 개명

 

21. 1818년 순조 18년, 57세

봄에 목민심서 48권을 완성하다.

8월, 이태순의 상소로 해배 명령이 내려와 9월 14일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오다.

 

22. 1819년 순조 19년, 58세

여름에 흠흠신서 30권을 완성하다. 이 책의 처음 이름은 명청록이었는데, 후에 서경 우서의 흠재흠재, 즉, 형벌을 신중히 하라는 뜻을 따라 이름을 고쳤다.

 

23. 1822년 순조 22년, 61세

회갑을 맞아 자찬묘지명을 짓다.

 

24. 1836년 헌종 2년, 75세

2월 22일 진시, 다산의 회혼일로 친족과 제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고향 마재마을에서 생을 마치다.

유명대로 여유당 뒷편 광주 초부방 마현리 자좌의 언덕에 장사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