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북조시대
고다이고 천황에게 패한 아시카가 다카우치는 1336년 규슈에서 재기하여, 다시 고다이고 천황을 공격해서 교토를 점령하고는 지묘인토의 고묘(光明) 천황을 옹립하여 북조(北朝)를 세웠다. 한편, 다카우치에게 패한 고다이고 천황은 요시노로 탈주하여 남조를 세웠다. 이리하여 일본에는 천황이 둘이 존재하며, 두 개의 조정이 존재하는 남북조 시대가 60년간 계속된다.
1336년, 고메이 천황이 즉위하자, 다카우치는 17조의 건무식목(建武式目)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다카우치가 막부를 설치하는 데 따른 기본 방침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건무식목은 교토쿠 태자의 17조 헌법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제1조는 검약, 제2조는 술을 많이 마시고 노는 것을 삼갈 것, 제3조 강도·살인 등을 단속할 것, 제4조 개인의 주거를 침입하지 말 것 등이다.
건무식목을 발표한 후, 다카우치는 권납대언이 되었고, 고노 모로나오(高師直)를 집사로, 오타(太田時連)를 문주소(問注所)의 장관으로 삼아 막부의 정치 조직을 구성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338년, 다카우치는 정이대장군이 되어 막부를 설치하였다. 다카우치가 설치한 막부를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후손인 요시미쓰(義滿) 때에 이르러 교토의 무로마치에 막부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후 북조와 남조는 전국에서 격렬하게 대립했다. 그뿐만 아니라 1350년에는 북조인 무로마치 막부 내부에서도 내란이 일어났다. 전국 정권을 지향하는 다카우치의 집사 고노 모로나오와 가마쿠라 막부를 고집하는 다카우치의 동생 다다요시(義義)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는데, 이를 '간노의 난(觀応의 擾亂)'이라고 한다. 다카우치와 다다요시는 서로의 견제를 위해 남조와 화해를 했다. 내란은 고노 모로나오가 다다요시에게 살해되면서 정점에 달했다가 다카우치가 다다요시를 독살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사이에 남조는 힘을 키워 교토를 점령했다. 하지만 1368년 요시미쓰가 3대 쇼군이 되자, 이마가와 사다요(今川貞世)의 활약으로 남조의 중심 세력지였던 규슈를 평정했다. 그러자 남조의 세력은 급속히 쇠미해졌다.
1392년,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남북조의 통일을 남조측에 타진했다. 조건은 남조의 고카메야마(後龜山) 천황이 북조의 고코마쓰(後小松) 천황에게 천황 지위를 양보하는 대신 남조측의 황자를 황태자로 삼는다는 것이다. 고카메야마 천황은 이를 승낙하고, 교토로 귀환하여 고코마쓰 천황에게 신기(神器)를 넘기고 퇴위했다. 이리하여 60년간 계속된 남북조의 동란은 끝이 났다. 그러나 남북조가 통일되고 난 뒤, 1410년 막부에 불만을 가진 고카메야마 천황은 교토를 탈출하여 다시 남조를 부흥하려고 했다.
출처 : 일본사 박석순외 4인 미래엔 2009.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