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20-14권) 속리산

카프리2 2020. 4. 3. 22:29

(2020.3.28-29일까지 1박 2일 동안 땅통종주 속리산 구간을 다녀오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속리산 책을 읽고 가니 산이 조금 보였다)

 

 

■ 책을 읽은 배경

- 땅통종주(백두대간) 속리산 구간을 가기 위한 예습   

 

 

 

■ 개 요

 

1. 읽은 날짜 : 2020. 3. 26(목) - 4. 3(금)

 

 

2. 글쓴이/출판사/페이지 : 글 박원식. 사진 김상훈/ 대원사 / 131


 

3. 제목 : 속리산

 

 

4. 목차

 

개관

속리산의 생김새

속리산의 이름난 장소들

법주사

속리산과 사람들

속리산의 뜻

 

  

 

■ 지은이 : 박원식

 

- 광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 1990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

 

(사진 김상훈)

-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 사진학과와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 혜진전문대 강사 역임

- 저서 : 산악사진의 이론과 실제, 한국의 산(상.하)

 

* 두 분다 대단하신 분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김상훈 작가의 산악사진 이론과 실제를 중고 서점에 구입했다.

  1995년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산악사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다.

 

 

 

■ 책을 읽은 소감

 

- 이 책을 두번째 읽는다. 속리산이야 많이 가봤지만..다시 책을 읽고 산을 타고 후기까지 쓰니 속리산을 조금 더 알아 가는 것 같다.

- 기회되면, 이 책을 다시 읽고 속리산 8봉, 8대, 8석문을 1박 2일 정도 시간을 내서 걷고 싶다. 혼자서...자유롭게..사유하며  

 

 

  

 

■  밑줄을 그은 글


- 안개비가 자욱한 우기의 속리산은 실로 세상 바깥의 경개에 휩싸인다. 눈발이 고요히 흩날리는 겨울철의 그 어둑어둑한 수묵의 세계 역시 속리산의 이름과 어울린다. 고대의 위대한 방랑자 최치원(857-?)이 행리를 갖추고 타박타박 속리산에 도착한 것은 어느 계절이었을까. 그 신라의 순례자는 속리산에 이르러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이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는데 세속이 산을 떠나네"라고 심장하게 읆었다.

 

- 조선 초의 난폭한 군주 세조가 몹쓸 병을 고치기 위해 구불텅구불텅 가파르게 휘어진 말티고개를 넘어 속리산으로 들어갔다.

 

- 속리산은 이렇게 역사와 신화의 흥미로운 곳간이다. 속리산에 역사적 사실들이 흐르는 데에는 이 산이 조선의 수도인 한양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놓였다는 지정학적 배경이 깔려 있다. 찾아가 머물기가 그만큼 수월했던 것이다.

 

- 시인 고은은 '법주사는 여름철 장마비를 맞으며 찾아가야 제 맛이 난다'고 했지만 법주사로 이어지는 발길은 사시사철 줄달아 있다.

 

-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여덟'이라는 숫자이다. 우연찮게도 대와 석문에 이어 으뜸 봉우리 또한 여덟 개가 발탁되어 입길에서 입길로 전해졌다. 최고봉인 천왕봉을 비롯해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을 말한다.

 

- 세 개의 큰 강이 흘러 나오는 산(삼파수)

큰 산에는 큰 물이 흐르는 법이라지만, 속리산에 계곡물이 적은 것은 산의 덩치가 적어서라기보다 물길이 지하에서 오히려 잘 생성되게끔 생긴 절리의 암반 구조 탓이다. 그래 계류가 이내 땅 밑으로 스며들고 만다. 그러나 속리산의 수많은 산골짜기들에서는 세 강물로 향하는 빗물들을 모은다.

 

이를테면 천왕보에 떨어진 빗방울이 동쪽 산록으로 흘러내려 장각골에 이르면 머잖아 낙동강으로 들어가고, 남쪽으로 휩쓸려 대목골 산골짝으로 흐르면 금강이 된다. 한강에 합수하는 노선은 서쪽 사면이다. 이처럼 속리산 일댕서 형성된 물줄기는 흐르고 흘러 세 개의 장강으로 흩어진다. 이 삼파수 현상을 통해 속리산이 비록 수량이 빈약하지만 잘 발달된 계곡을 갖추었음과 그런 계곡을 만든 산의 깊이까지 헤아릴 수 있다.

 

- 달라지는 생태계

침엽수와 활엽수가 사이좋게 동거하는 속리산에서 가장 은성한 수목은 소나무이다.

 

보은군의 자료에 의하면 속리산에 솔잎혹파리가 퍼진 것은 지난 1977년부터였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소나무를 파억어 들어가 1982년에는 전체 소나무의 82퍼센트 정도가 병증을 나타냈다.

 

속리산이 다른 산에 비해 조류 서식처로서 훌룡한 임상을 갖추었으면서도 실제 조류상이 빈약한 원인은 무엇보다 산속을 헤집는 사람들의 발길이 날로 늘고 있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지나치게 예민한 족속인 새들의 교미와 번식은 은밀하고 조용한 숲에서만 가능하다. 결국 사람의 행렬에 밀려 많은 새떼들이 번식지를 옮겨 간 셈이다.

 

솔잎혹파리라는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살포한 살충제가 다른 곤충의 무리들까지 덩달아 쓸어 버린 것이다. 곤충이 줄어들자 새들도 속리산을 떠나게 되었다. 솔잎혹파리는 이처럼 연쇄적으로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 말티고개의 유래

말티고개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많지만 세조가 말을 타고 넘었대서 붙여졌다는 주석이 설득력이 있다. 세조를 태운 가마를 지고 고개를 넘던 가마꾼들이 가파른 굽이 길에서 퍼져 버리자 왕이 말로 갈아타고 고개를 넘었다는 것이다.

 

- 은혜를 갚는다는 보은(報恩) 지명이 생긴 이유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태종은 왕권을 거머쥐기까지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골육상쟁을 벌여야 했다. 그 바람에 형제 둘이 죽었다. 이른바 '조선조 제1차 왕자의 난'이다. 태종은 죄의식을 씻기 위해 속리산 법주사에서 원혼들을 달래는 천도불사를 크게 치렀다. 그 뒤 태종은 자신의 영혼이 정화된 듯한 평화를 얻었다. 그러자 태종은 그 사실을 기리기 위해 이전까지 보령으로 불린 지명을 '은혜 갚는다'는 의미의 '보은(報恩)'으로 갈았다.

 

- 입석대

해발 1,000미터의 산정에 곧추 선 입석대는 임경업이 7년 수도 뒤에 기량을 자랑하기 위해 누워 있던 바윗덩어리를 일으켜 세웠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에는 입석대에서 암벽 등반이 이루어지는 듯 꼭대기에 피톤이 박혔다.

 

- 상환암

'크게 기쁘다'는 '上歡'의 이름패는 선왕 이성계의 행적을 다시 밟게 된 세종이 기꺼운 심회에서 떠올린 작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민간에서 떠도는 애기로 실제적 고증을 거친 것은 아니다.

 

- 속리산 국립공원

충청북도 괴산군의 화양과 쌍곡, 그리고 경상북도 문경시의 가은땅 일부를 끌어안은 속리산 국립공원의 땅덩이는 283.4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처음 국립공원의 팻말을 붙일 때는 속리산 자체의 범위에만 한정한 60평방킬로미터에 불과했다. 그러나 1971년에 보은군 외속리면과 상주시 화북면 일부를 포함해 105평방킬로미터로 몸을 불렸고, 다시 1984년 12월에 화양동 도립공원까지 끌어당겨 지금 같은 울타리를 휘감게 되었다. 이러첨 원재 속리산에 비해 거의 다섯 배에 이르는 속리산 국립공원 안에는 점점이 박힌 마을들과 아스라한 들판까지 포함되어 있다.

 

- 화양동 계곡

흔히 금강산 만폭동에 견주어지는 화양동 계곡은 기괴 무쌍한 암반들이 만들어 낸 풍치를 자랑한다.

 

- 쌍곡 계곡, 선유동 계곡

괴산군 청천면 쌍곡리의 쌍곡 계곡, 퇴계 이황이 머물며 이름을 지었다는 청천면 송면리의 선유동구곡 역시 화양 계곡의 경승에 어깨를 겨누는 속리산 국립공원의 참스런 자연 세계이다. 한편 문경 쪽으로는 대야산(931m)의 웅숭 깊은 산골짝인 선유동이 속리산 국립공원을 지킨다. 신선이 놀았다는 이 골짜기가 내선유동으로 불리는 것은 10킬로미터쯤 떨어진 괴산의 선유동과 짝을 이룬 때문으로 괴산 쪽은 외선유동으로 구분된다. 내선유동에는 최치원의 발길이 남았으며 용의 비늘 자국을 남기고 승천했다는 용추바위가 승경의 절정을 이룬다.

 

- 법주사 창건 역사

신라 진흥왕 14년(533) 때의 일이다. 의신이라는 스님이 멀리 천축국(인도)에 이르러 불교 공부를 마친 뒤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돌아왔다. 의신은 마땅한 절터를 찾아 헤매다가 속리산에 이르렀다. 그때 흰 노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울부짖는 게 아닌가. 의신은 이에 느껴지는 바 있어 노새의 잔등에서 경전을 내리고 절을 세웠다. 절 이름이 법주사인 것은 의신이 전한 경전, 곧 부처의 말씀(法)이 머물렀다(住)는 데에서 얻어졌다. -조선불교통사-

 

- 법주사 3대 국보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연지

 

- 삼년산성

신라 자비왕 13년에 축조된 것으로 3년 동안 쌓았다는 이 성은 최대 높이 13미터에 폭은 5미터에서 8미터에 이르고 길이는 13미터가 넘는 정교하고 장중한 성채이다.

 

- 속리산의 전체 형세를 조망할 수 있는 2곳 : 수정봉, 견훤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