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3권) 나 홀로 백두대간
1. 읽은날짜 : 15.11.7-11.30
2. 지은이/출판사/페이지 : 이종호/지식과감성/397
3. 책 제목 : 나 홀로 백두대간
4. 목 차
1) 백두대간의 이해
2) 백두대간 종주시 준비사항
3) 구간별 산행기
- 지리산권
- 덕유산권
- 속리산권
- 소백산권
- 태백산권
- 오대산권
- 설악산권
5. 밑줄을 그은 글
- 장터목은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 판던 곳에서 유래하였고 대피소는 150명을 수용할 수 있다.
- 벽소령은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의 주능선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달밤이면 푸른 숲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지리산 10경 중 제4경으로 벽소명월이라 한다.
- 형제바위는 옛날 성불수도 하던 두 형제가 산의 요정인 지리산녀의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道身)을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몸이 굳어져 지금의 형제바위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 삼도봉은 정상의 바위가 낫날과 같은 모양이라 낫날봉 또는 날라리봉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경남, 전북, 전남도가 만나는 지점으로 넓은 바위위에 쇠로 만든 삼각형 모양의 정상표지판을 세워놓았다.
- 반야봉은 지리산 3대 주봉이지만 높이와 관계없는 상징적 제2봉으로 지리산 능선의 어느 곳에서 보아도 여인의 둔부와 흡사한 모양의 오롯이 솟아 오른 두 봉우리를 볼 수 있으며 지리산 제3경인 반야낙조의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다.
- 성삼재(姓三峙)는 삼한시대에 마한군에게 쫒기던 진한왕이 지리산 달궁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장군들을 배치하였는데 북쪽 능선에는 장군 8명을 배치하였다 하여 팔랑재, 동쪽은 황장군이 맡았다고 하여 황령재라 불렀고, 남쪽 능선에는 성(姓)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해서 지키게 하였다 하여 성삼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만복대라는 이름은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또한 만복대 능선은 경사가 완만해 나이든 산악인들도 무난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펑퍼짐한 시골 아낙의 엉덩이처럼 풍만하고 넉넉해 보이는 만복대는 산을 찾는 이들을 심성 좋게 품어준다. 가을이면 온 능선을 뒤덮는 억새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억새들 사이를 걷노라면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진다
- 정령치는 서산대사의"황령암기(黃嶺岩記)"에 의하면, 기원 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장군(鄭將軍)을 이 곳에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 지리산 서북릉에는 지형도상에 고리봉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정령치 너머의 고리봉(1,304m)이고 이를 큰고리봉, 또 하나는 성삼재와 묘봉치 사이에 있는 고리봉(1,248m)으로 큰 고리봉 보다 낮다 하여 작은 고리봉으로 불린다. 고리봉하면 큰고리봉을 말하는데, 일명 환봉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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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산은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쳐 있으며 이 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낙동강과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이 산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여 구룡산이라 하는데 용이 승천할 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 승천하는 용을 보고 '뱀이다'하고 꼬리를 잡아 당겨 용이 떨어져 뱀이 되었다는 믿기지 않은 전설이 있다고 한다.
- 곰넘이재는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문헌 영가지에 웅현(熊峴)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우리말로 순화된 것으로 보인다.
- 천제단은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한 제단으로 천제단은 정상부에 천왕단, 북쪽에 장군다, 그리고 천왕단으로부터 남쪽 300m 떨어진 지점인 이곳에 하단, 이렇게 3개의 단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충으로 신라시대에는 태백산 꼭대기로 통하는 고갯길이 있어 천령(天嶺/재령)이라 하였는데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새로 길을 낸 것이라고 한다.
- 만항재는 백두대간 남한 구간에서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재(해발 1,330m)로 영월군 상동읍과 정선군 고한읍을 연결하는 414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 이곳은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신앙의 성지로 함백산 일대에 광산이 많은데 광부들이 지하 막장에서 일하다가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자 가족들이 이곳에서 무사안전을 위해 기도했던 곳이라고 한다.
- 두문동재(해발 1,268m)는 영월군 상동읍과 정선군 고한읍을 잇는 만항재(1,330m)에 이어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갯길이다.
- 금대봉은 정선군 고한리와 태백시 장죽동과 화전동 사이에 있는 산으로 주목 등 각종 원시림이 빽빽한 창죽마을의 진산이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용소, 제당굼샘을 안고 있는 산으로 금대봉과 은대봉의 이름은 신라 선덕왕 때 자장율사가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 정암사를 창건하면서 세운 금탑, 은탑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 온다.
- 쑤아밭령은 수화(水禾/벼화) + 밭, 즉, 논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 삼수령은 태백과 정선을 연결하는 35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발원지이며 민족의 시원인 태백산의 상징인데 병자호란 때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태백산 일원의 산중으로 숨어들었던 데서 피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삼척 사람들이 도참설의 이상향으로 불린 태백 황지로 피했다고 하여 피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백시는 피재의 어감이 좋지 않다며 남으로 황지천을 지나 낙동강, 북으로 골지천과 정선 아우라지를 거쳐 한강, 오십천을 통해 동해 쪽으로 빠지는 물길의 발원지라 해서 삼수령으로 바꿨다.
이 영향으로 삼수령에서 광동호에 이르는 지역의 행정지명도 사조동에서 삼수동으로 바뀌었다.
- 빗물의 운명
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재편된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의 명으로 빗물 한 가족이 대지로 내려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빗물 한 가족은 한반도의 등마루인 이곳 삼수령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으로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반도 그 어느 곳에 내려도 행복했으리라. 이곳에서 헤어져 바다에 가서나 만날 수 밖에 없는 빗물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이곳 삼수령만이 전해주고 있다.
- 建의령은 태백 상사미에서 삼척도계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고려 말 삼척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고갯마루에 관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자리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여 이 고개를 넘어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구부시령은 태백 하사미와 외나무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옛날 한내리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있어 서방만 얻으면 죽고 죽어 아홉 남편과 살았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 덕항산은 태백 하사미와 삼척 신기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화전(火田)할 수 있는 평평한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고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되면서 바뀌엇다고 한다.
- 귀네미 마을은 본래 원시림의 울창한 산이었는데 1986년 삼척시 하장면에 광동댐이 생기면서 광동리를 비롯해 숙암리와 조탄리 등에 흩어져 살던 37가구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고 가파른 산비탈을 개간해 초록물결의 고랭지 배추밭을 이루었는데 동해 해돋이와 매봉산 해넘이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 두타산은 삼척과 동해시의 분수령이며 두타(頭陀/험할타)는 '속세의 번뇌를 끊고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청옥산은 북으로는 고적대, 동으로는 두타산과 연결되어 있는 해동삼봉(海東三峰) 중의 하나로 청옥(靑玉)이 발견되고 약초가 많이 자생하여 청옥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연칠성령(連七星領/거느릴령)은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길의 산세가 험하여 난출령(難出領)이라고 불리었고,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望京臺)라 하였는데, 인조 원년 명재상 택상 이식이 중봉산 단교암으로 은퇴할 때 이곳에 올라
망경한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청옥산과 고적대 등 커다란 산줄기들이 연속으로 자리잡고 이어지며 장벽을 이룬 곳으로 험준한 산세로 인하여 이곳을 빠져 나가기가 매우 어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고적대는 동해시, 삼척시, 정선군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으로 기암절벽이 대를 이루어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정상은 사진으로 본 모습 그대로 뽀쪽한 봉우리다.
- 백복령은 택리지에는 백봉령, 여지도서 편에는 백복령, 중보문헌비고에는 백복령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백복령은 복령(茯령/복령복)이라는 약초 중 흰 복령이 많이 자생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37년 42번 국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교통로였다.
- 카르스트지형은 고생대의 조선계 지층에 분포하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빗물과 지하수(이사화탄소를 함유한 물)의 작용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물에 용해됨에 따라 암석이나 지층이 침식되는 일종의 화학적 풍화작용이다. 카르스트 지형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하에 하천이 흐르고 있어 때때로 대규모의 석회암동굴(예 : 종유동)과 표면에 돌리네라고 불리는 원형의 외지(움푹 패여 웅덩이가 된 땅)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강원도의 삼척, 정선, 영월과 충북 단양 등지에 발달되어 있다.
- 강릉서대굴(강원도 기념물 제36호)은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약 4억8천 만 년 전)에 퇴적한 조선누층군, 석병산층 석회암 내에 형성되어 있는데 동굴의 길이는 약 500m이고 동굴 내에는 종유석, 석순 등 동굴 생성물이 성장하고 있으며 19종의 동굴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 석병산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와 옥계면 산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두리봉 동남쪽부터 산 전체가 돌로 싸여 있어 바위가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닭목령이란 강릉에서 왕산골을 지나 계항동을 넘나드는 고개마루로 옛날에는 닭목이, 닭목재라 하였다. 남쪽으로 2.3km 거리에 있는 문바위까지를 계항동 즉 닭목마을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산세가 천상에서 산다는 금계(金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극인 금계포란형이고 이 고개마루는 금계의 목덜미에 해당한다고 하여 계항 즉 닭목이 된 것이다.
- 고루포기산은 왕산면 대기리 고루포기와 대관령면 횡계리, 수하리의 삼각경계가 되는 산이다. 대기리는 고랭지 채소주산지이며 왕산면에서는 제일 늦게 1967년에 마을이 생긴 곳인데 다복솔이 많아 고루포기라 칭해졌다고 하며 이곳에는 고로쇠나무도 많다.
- 행운의 돌탑 안내판에는 우리 선조들은 험한 산길을 지날 때마다 길에 흩어진 돌들을 하나씩 주어 한곳에 길도 닦고 자연스럽게 돌탑을 만들어 여로의 안녕과 복을 빌며 마음으로나마 큰 위안을 받았다. 이런 선조들의 풍습을 오늘에 되살려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백두대간인 이곳을 등산하는 모든 이들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고자 이 행운의 돌탑을 세우게 되었다. 이곳을 지나실 때 마다 이 돌탑에 정성을 담은 돌 하나를 쌓으시고 백두대간의 힘찬 정기를 받아 건강과 행운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한다
(동부지방산림청 강을국유림관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