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읽은날짜 : 2016. 7. 25 - 7. 28
2. 지은이/출판사/페이지수 : 게롤아인 알렉산더 / 뜨인돌 / 173페이지
3. 책 제목 : 인듀어런스(Endurance)
- 어니스트 새클던의 위대한 실패
4. 목 차
1부 영웅시대
2부 남극을 향해
3부 침몰
4부 페이션스 캠프
5부 보트 여행
6부 제임스 커드 호의 항해
7부 사우스 조지아 섬
8부 엘리펀트 섬
에필로그 나의 동료들에게
5. 책을 읽은 소감
- 본 책은 어니스트 새클턴의 위대한 실패를 담은 책이다.
얼마전 독서클럽에서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라는 정진홍님의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의 9장이 모험(패배 앞에 무릎 꿇지 마라)이다.
본 책을 약 7-8년전에 읽었는데 마침 우리 집 서가에 꽃혀 있어서 다시 읽었다.
1900년초 남극 탐헌당시 노르웨이의 아문센에 영국의 스콧이 패배해서
영국민은 자존심이 상했다. 새클턴은 배로 남극을 탐험하다 부빙에 갇혀 2년여를 고생하다
28명 전원이 생존하는 휴먼드라마다.
아름다운 리더의 채취를 느끼기 위해 읽었는데..역시 감명 깊은 책이다.
말 그대로 휴먼드라마다.
갑판도 없는 배로 엘리펀트섬에서 사우스조지아섬까지 어떻게 갈 수 있었을까..불가사의하다.
6. 밑줄을 그은 글
- 새클턴은 부하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로 널리 인정받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믿음과 충성을 보였다.
- 유명한 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턴 경이 선원을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친구인 블랙보르와 함께 탐험대에 지원했다.
베이크웰이 증기선이 아닌 범선 항해 겸험이 많다는 사실에 만족한 새클턴은 곧바로 그를 채용했지만,
블랙보로는 돌려보냈다. 더 이상의 선원은 필요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블래보로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몰래 선실의 사물함 속에 숨었다. 배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한 다음 날,
이 젊은이는 대장으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었다.
'만일 식량이 떨어져서 굶게 되면 널 제일 먼저 잡아먹을 거야'
- 의사로 참가한 맥클린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새클턴은 진정으로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얼음 위에서 겨울을 보내야 한다고 짤막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는 절대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겨울을 준비했다.
- 새클턴은 규율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지만 모든 일은 그의 동의를 받아 이루어졌다.
대원들은 그의 말이 명령 이어서라기보다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복종했다.
그는 늘 공정햇으며, 의복을 비롯한 모든 물품을 선발대나 고급 대원들보다 일반 대원들에게 먼저 분배했다.
일반 대원의 물품이 먼저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라고 허슬리는 일기에 적었다.
- 말썽을 피우는 사람은 필요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다루었다. 갑판장 존 빈센트는 대원들 중에서 가장 크고 힘이 셌으며
으스대기를 좋아하는 트롤 어부였다. 어느 날 대원 한 명이 새클턴에게 갑판장의 부당한 행동을 지적했다.
새클턴은 즉시 빈센트를 불렀고, 부들부들 떨면서 새클턴의 방을 나온 빈센트는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새클턴은 이런 일에 절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 새클턴은 부빙이 대원들을 북서쪽으로 더 데려다주길 원했다. 그리하여 약 650km 떨어진 플랫 섬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근하기를 원했다.
그 섬엔 1902년에 스웨덴 탐험대가 만든 오두막이 있고 비상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새클턴 자신이 12년 전에 직접 그 탐험대의 구조 작업을 도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위슬리에 의하면 클럽하우스는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노련한 뱃사람 서너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 사람이 노르웨이어로 말했고 감독관이 통역해 주었다. 그는 40년 간 바다에서 지냈으며, 사우스 조지아에서 케이프 혼까지, 그리고
엘리펀트 섬에서 사우스 오크니까지 모든 곳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갑판도 없는 6미터 짜리 배를 타고 엘리펀트 섬에서 사우스 조지아까지 항해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는 평생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감탄했다.
- 새클턴은 갑작스런 심장 발작이 그를 덥쳤고, 그는 오전 2시 50분에 죽었다. 검사를 맡은 맥클린은 사인이 관상동맥죽종 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쇠약한 상태에서 무리를 했기 때문에 병이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다. 이때 새클턴의 나이는 47세였다.
새클턴의 시신을 영국으로 옮기려던 허시는 남편을 사우스 조이자에 묻어 달라는 새클턴의 아내 에밀리의 편지를 받았다.
자유로웠던 새클턴을 좁고 복잡한 영국의 공동묘지에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듀어런스호의 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