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지도방/국립공원지도

지라산 목통골 불무장등 등산지도 모음

카프리2 2016. 9. 30. 12:51

(본 자료는 2016. 10. 2 나사모산우회와 목통골-삼각봉-불무장등-황장산-화개장터를 산행하기 위해 카프리가 모은 등산지도이다)

 

 

 

 

섬진강변의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쌍계사를 지나고 신흥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따라가면 범왕리 목통마을이 나온다. 물레방아도는 지리산의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목통마을을 휘감고 도는 물줄기가 있는데 이 골짜기가 연동골(목통계곡)이다.

골짜기 안에 30여년 전까지만해도 연동마을이란 곳이 있었다고 해 연동골이라 불린다.

지금은 오히려 목통마을의 이름에서 따 목통계곡으로 더 알려져 있다.

목통마을은 으럼덩굴이 많아서 붙어진 지명이다. 으럼의 이곳 방언이 먹통이었고 먹통마을은 좀 그러니 목통이라 불리워졌다한다.

으럼덩굴의 뿌리와 줄기의 껍질을 벗긴 뒤 햇볕에 말린 것을 목통(木通)이라 하고 한약재로 쓰인다니 이래저래 목통마을 목통교 바로 옆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물레방아 산장을 지나서 우측 작은길이 들머리

 

 

등산로를 따라 화개재까지는 대략 8km 남짓하다. 아직은 일반 등산객에게는 덜 알려진 연동골은 아기자기한 경관과 조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통마을을 출발해 30여 분 가량 오르면 연동골의 으뜸 명소인 스님소(沼)가 나온다. 칠불사 스님들이 목욕하는 곳이라 해 붙여진 지명인데 늘 옥류가 흐르며 싱그런 분위기가 가히 세속의 때를 씻을만 하다는 느낌이 간다. 계곡을 따라 한동안 가면 풀밭과 잡목 지대로 변해 있는 마을터를 만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께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연동마을 터다. 마을이 사라진 것은 1967년 여름 서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9명이 지리산에 들어와 이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다 모두 사살된 사건이후 연동마을을 없어지게 했던 것이다. 연동마을 터를 지나 30여분 가량 지나면서부터 화개재까지 급경사로 힘든 코스지만 쉽게 화개재에 오를 수 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이여

내 안에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곳을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지리에 있어도

지리산이 그립다...

연동골은 화개재 가는 길목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그 물줄기는 화개재를 좌우로 해 두 봉우리를 타고 이어지는 두 줄기 능선에서 흐른다.

해발 1,360m의 화개재 동쪽으로는 1,533m의 토끼봉 정상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1,550m의 삼도봉이 솟아 있다.

토끼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능선은 칠불사까지 내려와 목통마을에서 꼬리를 감춘다.

이 능선을 칠불사 능선으로 부른다.

삼도봉에서 뻗어내린 능선은 불무장등(1,446m), 통꼭봉(904m), 당재를 거쳐 황장산(942m)으로 이어진 뒤 화개장터가 있는 탑리까지 내려와 섬진강에 닿는다.

불무장등 능선이라 부른다.

칠불사 능선과 불무장등 능선 사이의 골이 연동골이다.

물론 연동골은 화개동천의 지류에 해당된다.

화개동천은 크게 신흥마을에서 두 계곡으로 나누어지는데 왼쪽이 범왕계곡 연동골로 이어지며 오른쪽으로는 의신계곡(대성골, 빗점골, 절골, 산태골 등등)이 있다.

지리산 최대의 계곡답게 화개동천에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계곡미를 간직하고 이름까지 독립적으로 갖고 있는 지계곡이 최소한 10개에 이를 정도로 많은 지류를 거느리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지류를 형성하는 연동골은 해안지방과 내륙 산간지방을 잇는 최단거리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화개재가 지리산 능선 가운데 가장 낮은 해발인만큼 넘나드는 길목으로 유용하게 활용된 것이다.

그 화개재를 기점으로 해 연동골과 내륙의 뱀사골은 훌륭한 길목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져 있는 길이었던 셈이다.

경남과 전북의 경계 지점이기도 한 화개재는 옛날부터 화개장터가 크게 번창한 탓에 그 지명이 화개재로 불렸다

 

 

화개재

화개재는 지리산 능선가운데 가장 낮은 해발인 만큼 지리산을 넘나드는 길목으로 유용하게 활용되던 곳이다.

화개재를 기점으로 연동골과 내륙의 뱀사골이 길목 역할을 해왔고, 화개재는 해안지방의 소금이나 수산물, 내륙지방의 삼베를 비롯한 농산물을 서로 교역했던 삶의 고갯마루였던 것이다.

 

불무장등

불무장등능선은 주릉 상의 삼도봉(1,533m)에서 불무장등(1,446m), 통꼭봉(904.7m), 황장산(942m)을 거쳐 섬진강변의 화개까지 이어지는 긴 능선을 말한다.

이름부터 만만찮게 느껴지는 불무장등 능선은 영신봉(1,651.9m)에서 삼신봉(1,284m) 형제봉(1,115.2m)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과, 왕시리봉 능선과 함께 지리산 남부를 대표하는 능선이다.


목통골
노고단, 돼지평전, 임걸령을 지나면 노루목이다. 노루목에서 왼쪽으로는 반야봉 오르는 길이고 직진하여 15분 정도 가면 삼도봉이다. 삼도봉에서 남으로 길께 불무장등이 뻗어내린다. 삼도봉에서 가까이에 토끼봉이 있다. 토끼봉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은 칠불사로 이어진다.

 

삼도봉과 토끼봉사이가 화개재. 토끼봉에서 뻗어내린 능선과 삼도봉에서 뻗어내린 불무장등사이가. 목통골이다. 뱀사골 사람들이 화개장을 가기 위하여 넘나드는 길이다.

 

불무장등
지리산 수많은 봉우리중의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봉우리의 이름을 갖지 못한 산등성이가 있다. 바로 불무장등(.1,446m)이다. 지리산에서 유독 이 봉우리만 장등이란 명칭을 쓰고 있는데 봉우리처럼 우뚝 하지도 않고 봉곳 솟아 있지도 않다. 한자 이름 그대로 "없지 아니한 긴 산등성이"처럼 그저 밋밋한 고갯마루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불무장등이다.

 

 

삼도봉(三道峯)
삼도봉은 경남과 전남·북을 구분짓는 봉우리이다.
반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 가운데 특이할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반야봉의 그늘에 가려 아주 이름없고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산세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라는데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삼도를 나누는 삼도봉의 지명은 그동안 삼도봉이란 지명으로 불리지 못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 일원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명명됐다. '낫날봉' '날라리봉' '늴리리봉'등 다양하게 불리던 이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명명되었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삼도봉은 주릉의 서쪽면에 위치해 있으나 주릉을 조망하기에는 아주 훌륭한 망루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반야봉을 지척에서 음미할 수 있으며 멀리 천왕봉의 선경과 천왕봉에서 연하봉, 촛대봉을 잇는 천하제일경의 파노라마가 눈 앞에 선하고 남부능선의 아기자기함이 아스라히 다가오는 장관이 있다. 그리고 임걸령과 노고단이 손에 잡힐 듯하다.

 

종주등반을 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봉우리이기도 하다. 삼도봉은 화개재에서 2km의 짧은 거리다. 또한 반야봉까지도 2km의 거리를 두고 있다. 노고단까지는 8.5km 남짓한 거리로 삼도봉은 종주능선상의 요충지이다. 더욱이 반야봉 등반에 앞서 삼도봉과 반야봉, 그리고 삼도봉에서 노고단쪽으로 2km 남짓한 곳에 위치한 노루목등 세지점은 삼각형의 등산로를 연결하고 있다.

 

종주등반때 지리산 제2봉격인 반야봉을 '오르느냐' 마느냐'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등장할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대부분 장거리 산행에서의 산행 부담으로 반야봉을 생략하는 문제가 논쟁거리로 등장하기 일쑤다. 이는 반야봉을 오를 경우 4km의 산행을 추가해야 하는 반면 오르지 않고 삼도봉에서 노루목으로 곧장 향하면 그만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르지 않으면 반야봉의 절경을 느낄 수 없다.

 

기서 등장하는 "노루목"이란 지명의 유래도 흥미롭다. 노루목이란 독특한 이름은 노루들이 지나다니던 길목이란 뜻도 있지만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가 이 곳에서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지켜들고 있는 형상의 바위 모양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삼도봉은 주릉상의 요충지면서 그 산세는 섬진강으로 뻗어내리는 불무장등 능선의 시발점이다. 그 지명에 걸맞게 경남과 전남을 구분지으며 섬진강까지 이어지는 삼도봉과 불무장등 능선은 삼도봉에서 해발 1,446m의 불무장대, 해발 942m의 황장산을 지나 촛대봉에서 잠시 솟았다가 화개장터 부근의 산자락을 끝으로 섬진강으로 잠긴다. 19번 국도를 가다보면 화개장터에서 피아골 입구 못미쳐 있는 검문소 부근이 바로 경남과 전남의 경계지점이다.

 

삼도봉에서 시작되는 불무장등 능선은 경남쪽으로는 연동골과 화개골을 빚어내고 있으며 전남쪽으로는 피아골을 만들어내 모두 섬진강에서 하나가 된다. 삼도봉 가는 길은 주릉을 따라 거치는 것외에 연동골이나 뱀사골을 거쳐 화개재에서 잠시 쉬고 오르는 등산로가 있으며 반야봉을 오른 뒤 하산길에 들를 수 있다.

 

그러나 삼도봉을 목표로 하는 등산로는 연곡사에서 피아골을 따라 오른뒤 피아골 산장에서 주능선으로 올라 오르는 길과 불무장등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 손꼽힌다.

 

 

 

 

지리산에 있는 모든 계곡의 마을들이 번잡한 상가로 가득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 곳은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은 잘 알려진 등산로 초입에 해당되는 이야기고 아직 때묻지 않은 골짜기와 마을들도 찾아보면 많다. 그만큼 지리산의 품은 넓다.

목통마을에서 연동골 화개재로 올라가는 코스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코스다. 그러나 한두번 이곳으로 산행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연동골 산행만을 고집한다. 뱀사골이나 한신계곡에 비교해 계곡의 아름다움이 뒤지지 않고 길만 조금 벗어나도 계곡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다.

화개장터에서 장을 본 장사치들이 주능선을 넘던 가장 빠른 지름길로 예전엔 뱀사골산장에서 파는 물건들을 연동골로 져올렸다. 목통마을 이름을 따서 목통골로도 부른다.

들머리는 목통마을이다. 목통마을은 오래 전부터 물레방앗간이 있어 주변 마을에서도 여기에서 곡식을 찧어다 먹던 큰 마을이었다. 골이 깊고 많이 알려지지 않아 소박한 멋이 있는 마을이다. 목통마을까지는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다. 신흥에서 내려 1시간 30분을 걸어 올라가거나 범왕리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범왕리와 목통마을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내려 20분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목통마을 물레방아산장을 지나 길이 ㄷ자로 꺾어지기 전에 곧장 정면으로 들어선다. 왼쪽으로 천수답 가운데 물레방앗간도 보이고 길도 부드러워 마치 시골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가끔 바위도 넘는 길을 30분쯤 가면 계곡을 건넌다. 10분쯤 가면 산비탈 왼쪽으로 연동이라 불리던, 화전민이 살던 터가 있다. 불무장등 능선에서 조금씩 흘러내리는 지류를 몇 개 지나 40분쯤 가면 두 번째로 계곡을 건넌다.

연동골 산행에서 큰 계곡을 건너는 것은 두 번밖에 없다. 연동골 입구에서 건너는 곳은 표지기가 확실하지만 두 번째로 건너는 지점은 확실치 않다. 특히 화개재에서 내려온다면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고로쇠 약수를 채취하러 다니는 길과 혼동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계곡을 건너면 길은 오른쪽 비탈로 나 있다. 큰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칠불사 능선에서 흘러내린 작은 계곡을 두 번 건너 20분쯤 가면 큰 계곡과 만난다.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큰 계곡과 만나는 지점에서 길은 계곡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나 있다. 이곳부터 비탈이 가팔라진다. 30분쯤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 기울기는 약간 수그러 든다. 20분쯤 더 가 화개재를 치고 올라가는 길도 무척 가파르다. 20분 땀을 쏟으면 화개재에 설 수 있다. 총산행시간은 3시간쯤이지만 들머리까지 진입하는 시간이 2시간쯤 걸린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산동면 좌사리

 

 

 

 

 

 

 

 

 

 

 

 

지리산 황장산 942.1m


.“황장산의 한문 표기가 잘못되어, 지금은 ‘누른 노루’라는 ‘황장산(黃獐山)’으로 쓰고 있으나 원래의 지명은 정상(고개)까지 멀고도 먼 산이라는 뜻인 ‘항장산(項長山)’이었다


황장산 정상 곳곳의 바윗덩어리는 전망대로 산아래 집들과 인근 쌍계사가 내려다보인다.

정상에서 15분 내려서면 동서로 이어진 새껴미재는 구례와 하동의 장사치가 물물교환하던 재다.


<불무장등>지리산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긴 산등성이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며, 양 겨드랑이에 피아골과 화개골을 끼고 뻗어 내린다. 이름 하여 불무장등 능선으로 불무장등, 통곡봉, 황장산, 촛대봉을 일으켜 세우고 섬진강에 그 꼬리를 내린다.


<통곡봉(905m)>. 불무장등에 있는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봉우리. 정유재란(1597년) 때 인근 의병, 승군들이 올라와 패전의 슬픔으로 통곡했다하여 이름다.


<목통골>목통은 목통이란 한방 약재이름에서 비롯된 지명. 으름(한국산 바나나)이라고 불리우는 덩쿨의 열매. 으름 맛은 맵고 달며 방광질환에 효과가 있다 한다.


'원래, 으름 덩쿨나무가 지천에 깔려있던 목통골이다. 토끼봉에서 칠불사로 이어진 남쪽능선. 칠불사 능선과 불무장등 사이가 목통골이다,


목통골은 뱀사골 사람들이 화개장터로 가는 길목. 동물 이름 <토끼봉, 노루목, 돼지평전>이 감싼 골. 화개장터에서 화개천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신흥마을.


여기서 왼쪽으로 따라가면 범왕리 목통마을, 한때 목통마을의 상징이었던 물레방아는 지금은 거의 허물어져 간다.


<화개장터>광복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7대 시장 중의 하나로 조영남의 '화개장터'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구례군과 하동군의 경계에 있는 화개장터는 섬진강을 이용 발달한 장터였다. 화개장이 한창일 때는 남해 거제 삼천포 등 남해안의 해산물이 구례 남원 함양 등지의 내륙 농산물, 지리산에서 나오는 임산물들과 교환됐다.

  

<야생차밭>화개동천의 양옆 산등성이로는 화개 사람들의 밥줄인 차나무가 산록에 아무렇게 널브러져 자란다.

이 야생차밭은 화개장터 동서 산록에서부터 쌍계사를 지나 범왕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따라 12㎞나 뻗어 있다.

 

이 차나무는 하동과 산청, 구례 등 지리산 언저리 곳곳에 흔히 무리져 자생하는 대나무밭과 어울려 겨울에도 초록색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치 라인강을 따라 하이델베르크 언덕을 오르다 보면 키 작은 푸른 포도밭을 만나는 정경과 흡사하다. 그러고 보면 화개는 찻잎처럼 온유하고 댓잎처럼 푸른 선비 정신을 닮았다.


화개는 차 시배지, 범패의 발상지 등 그 문화를 말하자면 한이 없다. 화개를 노래한 시문만도 400여편이 넘는다.

 

<시인 묵객>화개를 둘러보고 노래한 시인 묵객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운 최치원, 목은 이색, 서산대사,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 부사 성여신,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등 많은 선비들이 화개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남명 조식>학문은 알기만 해서는 안된다며 실천을 강조한 대유학자 남명 조식은 일상생활에서 철저한 자기 절제로 일관하며 불의와 일체 타협하지 않았다.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바깥을 바르게 하고자 경과 의를 칼에 새기고 벽에 써붙인 것도 모자라 항상 방울을 옷에 달고 다니며 방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피는 치열함을 보였다.

 

조식은 1558년 4월10일부터 26일까지 화개동을 유람했다. 진주목사 김홍이 수행하고 큰 배까지 동원됐다. 조식은 화개동을 유람하고 적은 <유두류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삼백리길 바다와 산을 유람했지만 오늘 하루 동안에 세 군자(고려 말 섬진강변에서 은둔한 선비인 섯바위의 한유한, 화개의 정여창, 옥종의 조지서)의 자취를 다 보았다.


물을 보고 산을 보다가 그곳에 살던 사람을 보고 그 세상을 보니

산 속에서 10일간 품었던 좋은 생각들이 하루 사이에 언짢은 생각으로 바뀌었다.

훗날 정권을 잡는 사람이 이 길로 와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고 술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