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伽倻山 1,429.8m)은 조선8경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上王峰,牛頭峰 1,429.8m)과 최고봉인 칠불봉(1,432.4m)을 중심으로 톱날 같은 암봉인 두리봉,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 듯 이어져 있다.
가야산은 동서로 줄기를 뻗고 있으며 남북으로 경상북도 성주군과 경상남도 합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이곳은 옛부터 해동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종찰 해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야산은 우리나라 12대 명산중의 하나다. 합천군 가야면과 거창군 가북면, 경북 성주군 가천면 수륜면에 걸쳐 위치하고 있는 가야산은 옛부터 '산세가 천하에서 으뜸이고, 지덕은 해동에서 제일'이라 칭하여 왔다.
해발 1천m가 넘는 고봉들이 가야산의 준봉들을 이루고, 북에서 남으로 이르는 대덕유의 장쾌한 줄기와 홍류동천의 아름다운 계곡 등 장중한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가야산을 찾은 이라면 누구나 지덕이 해동제일이라는 칭송이 절로 나올만큼 품성이 좋은 산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가야산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이 옛날 가야국이 있었던 곳이고, 이 산이 가야국에서 가장 높고 빼어난 산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다. 가야산은 생김이 소머리 같다 해서 우두산 이라는 이름외에 상왕산, 설산, 중향산 등으로도 불리워졌다.
※ 산행코스
• 신부락→(30분)→해인사,용탑선원→(1시간)→능선갈림길→(40분)→상왕봉→(30분)→능선갈림길→(30분)→마애불입상→(50분)→해인사→(30분)→신부락(12km, 약 5시간)
• 신부락→(30분)→해인사→(5분)→홍제암→(1시간 30분)→두리봉→(1시간 30분)→상왕봉→(50분)→남릉안부→(1시간 30분)→해인사(약 6시간)
• 홍류동 매표소→상왕봉→(4.7km)→선유교와 마애불 갈림길→마애불입상→헬기장과 중봉(봉천대)→상왕봉
• 해인사 주차장→(25분)→해인사→(5분)→용탑선원→(1시간)→휴게소→(50분)→칠불봉
• 백운리매표소→심원사터→(1시간50분)→용기사터→(50분)→서성재→(50분)→칠불봉
• 백운리매표소→용기폭포→(1시간50분)→용기사터→(50분)→서성재→(50분)→칠불봉
• 백운동 주차장→성터→979봉→만물상바위→1,096봉→서장대→서성재→칠불봉→상왕봉→해인사(11.2km, 약 4시간 30분)
• 백운동 주차장→상아덤(서장대)→서성재→칠불봉→서성재→백운암지→동성재→백운동 주차장→가야산관광호텔(8.6km, 약 3시간 30분)
※ 교통정보
• 대전통영고속국도→88올림픽고속국도→해인사나들목→가야면→가야산(해인사)
• 남해고속국도→중부내륙고속국도→88올림픽고속국도→해인사나들목→가야면→가야산(해인사)
• 88올림픽→해인사나들목→가야면→가야산(해인사)
• 가천분소(백운지구)행 노선버스는 고령에서, 해인사행은 대구에서 운행한다. 호남 방면에서는 합천을 경유해 진입한다. 해인사지구 버스정류장 055-932-7362
• 고령→백운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5회(06:30, 08:20, 11:10, 14:45, 18:30) 운행. 요금 2,000원. 터미널 전화 054-954-4455.
• 대구→고령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시로 운행(06:00~20:50)하는 고령행 시외버스 이용. 요금 2,200원. 전화 053-656-2824~5.
• 대구→해인사 또는 청량사 입구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40회(06:30~20:00) 운행. 남산제일봉 청량사 입구 매표소는 가야읍에서 하차해 택시를 이용하거나 도보(약 4km)로 접근.
• 합천→해인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시간 간격(07:30~18:30)으로 운행하는 직행버스 이용. 터미널 전화 055-931-0142.
• 가야택시 전화 055-933-3477.
• 가천분소 주차장 부근의 가야산온천국민호텔은 시설이 깨끗한 숙박업소로, 식당과 사우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전화 054-931-3500.
• 치인리 해인사 관광단지에는 숙박업소와 식당이 여럿 있다(지역번호 055). 88장여관 932-7377, 국제여관 932-7382, 산장별장여관 932-7245, 진주장여관 932-7216, 향원장여관 932-7576.
• 치인리집단시설지구 내의 심일식당(주인 김재정)은 더덕구이와 돼지고기구이 등 20여 가지의 반찬이 한 상 가득 나오는 산채정식(1인당 9,000원)과, 더덕구이정식(9,000원), 된장찌개(6,000원), 버섯전골(20,000원), 자연산송이버섯국(15,000원), 능이버섯국(10,000원) 등의 음식으로 이름난 음식점이다. 전화 055-932-7254(7443)
•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사무소 055-932-7830, 합천군청 관광개발사업단 055-930-3755,6
해인사(합천) 한국관광공사 자료
* 3대 사찰의 하나인 문화재 보고, 해인사 *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순응,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연유되어 법보종찰로도 유명하다. 고려 태조는 이 절에 머물렀던 희랑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고 전지 500결을 하사했다.
해인사는 법보종찰이요, 화엄십찰의 하나이다. 최치원의 가야산 해인사선안주원벽기에 의하면 해인사는 순응, 이정 스님에 의하여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창건되었는데, 그때 왕의 조대비 성목태후가 대시주였다고 한다. '해인'이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인사는 화엄사상을 천명하고자 이루어진 도장이다. 해인사를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법보사찰이라 부르는 것은 해인사 대장경판전에 고려대장경판인 법보가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야산] 한국관광공사
가야산은 법보종찰 해인사의 주산이며 해발 1,430로서 소백산맥의 한 지맥으로 우리나라 팔경중의 하나인 영산일 뿐 아니라 조선조 세조대왕은 가야산은 천하명산이며, 생불주처라 하였고, 초대 주한 프랑스대사를 역임한 로제샹바르씨는 가야산의 승경과 고려팔만대장경판에 감복되어 마지막 유언에 나의 유해를 분말하여 해인사에 뿌려달라 하였으므로 1982년에 임종하고 해인사 천불동에 뿌려졌다. 무릉교에서 시작하여 홍류동 계곡은 홍송이 울창한 장장 10리여의 수석과 송림으로 이어져 다른 어떤 사찰과 명산에서도 보기 어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 문화재의 보고, 해인사에 대하여 *
해인사는 통도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 사찰의 하나이며 당에서 수도한 순응, 이정 두 대사가 신라말 애장왕 3년(802)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내에는 대소의 많은 법당이 있으나 그 대부분은 근세에 세워진 것이고 장경판전만이 조선 초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이 건물의 건립연대는 건물에 사용되었던 와당 또는 평와에 나타난 홍치 원년(1488)이라는 각명 등으로 추정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도 무사하였으나 오랜 세월에 낡았던 것을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전을 중수하고 1624년에는 법보전도 중수하였다.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해인사의 대표적 문화재,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 *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이라 하며, 또한 판수가 8만여판에 이르고 팔만 사천 번뇌에 대치하는 8만4천 법문을 수록하였다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현종 때의 초조대장경판이 불타버려 다시 새긴 대장경이므로 재조대장경판이라고 하며,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인사 대장경판이라 불리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다.
▼ 주변 산경표
가야산 산행개념도(월간 산)
가야산
1966년 6월 24일 사적 및 명승지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1972년 10월 13일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산국립공원은 전체면적 76.256㎢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뚝솟은 상왕봉은 일명 우두산으로도 불리며, 해발 1,430M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은 옛부터 해동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종찰 해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가운데 으뜸이라 했으며 신라말 난세를 비관하여 그 한을 달래기 위하여 산문에 들어가 선화(仙化)한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농산정, 학사대 등의 유적과 1995년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국 불교의 상징인 팔만대장경과 경판전을 보유하고 있다.
고기(古記)에 의하면 '산형은 천하에 절승 중 제일이다'라고 극찬하였으며,오대산(1,563M),소백산(1,439M),과 더불어 왜적의 전화를 입지않아,삼재(화재,수재,풍재)가 들지않은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며,사명대사께서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신 곳으로 지금도 옛 선현들의 숨결을 느낄수 있다.
조선8경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톱날 같은 암봉인 두리봉,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친듯 이어져 있으며 남북으로 경상북도 성주군과 경상남도 합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합천 쪽으로 드리운 산자락은 부드러운 육산을 이루고 성주군 쪽은 가파르고 험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기암괴석과 어울어진 가을 단풍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하고, 눈 덮인 가야산 설경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월간 산의 가야산 만물상의 관한 기사내용]
비바람에 깎이고 씻긴 기암괴석들은 억겁의 세월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꿋꿋하게 살았노라’고. 그 긴 세월 동안 각각의 바위들은 마치 ‘자연의 교향곡’이라도 켜는 듯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으로 거듭났다. 스스로 ‘교향악’이라고 불러달라는 듯하다.
만물상 능선의 백미는 그 능선 끝 지점에 있는 상아덤까지 계속된다. 상아덤에 올라서면 만물상의 모든 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참을 이리저리 뜯어본다. 이쪽, 저쪽으로 방향을 돌아가며 살펴본다. 카메라 셔터를 아무리 눌러도 지겹지 않다. 그런 1만 가지 형상을 한 만물상이다.
등산로 바로 옆 바위와 바위를 조그만 돌들이 연결하고 있다. 가야산성이다. 등산로 옆 산성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수백 미터 낭떠러지다. 한마디로 완전한 철옹성이다. 하지만 내부는 그리 평탄하지 않다. 성 안에는 용기사, 백운암, 일요암 등의 터전이 남아 있으나 전부 조그만 절이다. 그런 산성을 따라 등산로는 계속된다. 그러면서 만물상의 자태가 서서히 드러난다. 하나, 둘씩 드러낸 암벽은 수천, 수만 년의 풍상을 견딘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서로 뽐내는 듯하다.
기암의 향연에 등산객들이 발길을 멈춰, 산행 속도는 더욱 늦어진다. 늦어진들 어떠리. 흔치 않은 기암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 다들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향연을 즐긴다.
만물상의 끝은 상아덤이다. 상아덤에 올라서면 만물상이 시원스레 늘어서 펼쳐진다. 두루마리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형상들이다. 발아래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만물상의 험난한 코스를 어떻게 지나왔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그리 위험한 길은 아닌데도 말이다. GPS 고도상으로 1,160m다. 물론 동북쪽으로 가야산 정상 상왕봉(일명 우두봉 1,430m)과 바로 그 옆 최고봉 칠불봉(1,433m)이 더 높은 봉우리지만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상아덤은 따로 떨어진 독립 봉우리로, 신이 내린 정기를 받아 기암괴석의 만물상 형상을 다스리고 있는 듯하다.
가야.수도산 등산지도
2. 우두산-비계산-두무산-오도산-미녀봉 (약 20km)
한때 거창의 저런 산들에 매료되어 장거리를 연속으로 다니던 적이 있었다
(클릭확대)
가야산의 정상은 높이상으로 따지면 칠불봉이 상왕봉보다 3m높으니 정상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통상적으로 가야산의 정상은 상왕봉으로 통하고 있다
칠불봉은 성주군,상왕봉은 합천군에 속해 있으니 당연히 이견차이가있을수 있다
산과 지도와 관련된 행정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도 애매한 발표를 했다.
“하나의 산에는 여러 봉우리가 있다. 그 중에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해도 정상이 아니며
전체의 봉우리 중에 제일 중심이 되는 봉우리가 그 산의 정상이다.”
이 말 또한 완전한 기준이 될수 없는게 대개의 정상이 높이가 가장 높은 상봉을 일컫는 말이기도해서 헷갈리는 점이 없지 않다
어느 봉이 정상이든 상왕봉이나 칠불봉에 오르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너무 좋아
시시비비를 따질 겨를이 없이 조망 삼매경에 빠져든다
두개의 봉우리중 정상 여부에 상관없이 한 봉우리만 오르게 되진 않을터,
각자 개성있게 서있는 표시석과 그 정상부의 풍경이 아니 오를수 없게 만든다
칠불봉에서 상왕봉 조망
가야산 우두봉(상왕봉)에서 보는 봉천대와 거창과 합천의 산그리매
▼ 홀로 걸은 길
1. 산행일시 : 14. 10. 26(일) 08:40-18:00(9시간 20분)
2. 산행장소 : 수도-가야산 종주(27.2km/가민 gps)
3. 누구랑 : 나사모산우회 41명과 함께
4. 산행후기
- 아, 수도산을 올라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왜냐, 조망이 너무 좋아서....
- 배낭을 차분히 내려 놓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 햇볕도 따사로히 좋다.
그러나 사진을 많이 찍다 보니..후미를 본게 아니라
영원한 후미가 되었다.
- 좌일곡령 조망바위에서 혼자 아름다운 산너울을 보며 점심을 먹었다.
2명이 가야산쪽에서 온다.
우리 산악팀 후미가 어느 정도 가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30분 전에 본 것 같다고 한다.
- 땀을 흘리며 열심히 걸었지만
맨 나중에 골인해서 정말 미안하다.
- 나름 오후 5시 제한시간 까지 골인 할 줄 알았다.
왜나면...가야산 정상이 지척이어서..
그러나 마지막에 오름이 빡셌다..
- 또 사진을 찍고는 나사모 후미를 따라갈 수 없다는 교훈도 얻었다.
- 나이 탓인가..혼자 터벅 터벅 걷는 것이 좋다.
수도암의 승녀가 해인사까지 걸었을 이 길을...
- 이 길은 꼭 걷고 싶은... 길이었다.
남도의 산을 눈으로 나마 보아서 ...행복하다
▼ 수도-가야산 종주 지도
▼ 수도리 주차장 출발
우리명승기행의 가야산 소개
해인사는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다. 불교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바로 부처(佛)와 부처의 가르침(法), 그 가르침을 전하는 승려(僧)를 말한다. 이를 삼보라 하여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 중에서 이러한 세 가지 보물의 으뜸 역할을 하는 사찰이 있다. 불보사찰로는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승보사찰로는 순천의 송광사(松廣寺), 법보사찰로는 합천의 해인사다. 법이란 부처님의 말씀, 즉 석가여래의 지혜를 의미하는데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이 새겨진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는 불교경전의 성지이므로 법보사찰이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가야산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가야산은 그 형상이 소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우두산(牛頭山)이라 불렸으며 상왕산, 기달산, 중향산, 설산이라고도 불렸다. 가야산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있던 고대국가 대가야국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해진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국가의 기원에 관한 전설이 있는 산이기 때문에 ‘가야의 산’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명칭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인도의 불교성지이며 부처의 주요 설법처로 신성시되는 부다가야(Buddhagaya) 부근에 위치한 가야산에서 가져온 것이며, 또한 범어로 ‘가야’는 소를 뜻하는데 불교의 전래 이전에 우두산이라 불리던 산이 가야산으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한다.
지역의 성스러운 명산 가야산은 해인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해인사는 가야산의 너른 품에 자리하여 대찰이 될 수 있었으며, 가야산은 해인사를 산자락에 두면서 명산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화엄십찰 중 하나인 해인사는 802년(애장왕 3)에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하듯 해인사 또한 창건된 뒤 수차례의 중흥이 이루어졌다. 애장왕의 지원, 고려 태조의 귀의, 조선 태조의 발원, 세종과 세조, 성종의 중창 등 각별한 국가적 지원을 통해 오랫동안 거찰로 유지되었다. 해인사는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큰 화재를 입었는데 그때마다 곧바로 보수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 말엽에 중건되었다.
특히 해인사는 고려시대에 호국불교의 상징으로 제작된 고귀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600여 년이나 고이 보전함으로써 법보사찰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해인사의 명성은 삼재(三災)불입의 영기가 서려 있다는 가야산의 신령스러운 기운에 의해 이룩된 것이라 한다. 또한 해인사는 과거 우리나라가 국난을 맞아 위기에 처했을 때 호국사찰의 중심지였다. 이미 신라 말에 시작된 승군(僧軍)의 전통은 임진왜란과 일제시대 항일운동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해인사는 역사적 구국의 근거지였다.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장경각은 일반 건물과는 다른 구조를 지닌다. 즉 바닥은 마루로 만들어 지면의 습기를 방지하고 창살을 댄 간단한 창을 두어 통풍이 잘 되게 하였다
수도-가야산 환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