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통종주(완료)

무등산 저자 박선홍님의 인터뷰

카프리2 2019. 6. 26. 17:56

interview

 “무등산은 둥글고 덕스럽고 믿음직스런 산이에요”

<무등산> 저자 박선홍 옹

“어려서는 무등산 다녀왔다 하면 어른들이 용감하다고 칭찬했어요. 그런 산이 엉망이 된 적이 있어요. 일제 말 송탄유(松炭油)와 목탄(木炭)을 만들겠다고 소나무를 마구 벌채하고 군용 마초(馬草)로 사용하겠다고 억새와 풀까지도 베어냈어요. 6·25전쟁 때는 군사작전을 하느라 산을 많이 버렸고, 1960년대 중반 정부에서 숲 가꾸기 운동을 벌이기 전까지는 주민들은 땔감을 마련하느라 나무를 많이 베어냈고요. 산이 벌거숭이가 됐지요. 그랬던 무등산이 이젠 푸르게 되었고, 시민뿐 아니라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립공원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기쁘지 않겠습니까.”

1926년 광주에서 태어난 박선홍(朴墡洪) 옹은 무등산의 오늘이 있게 한 ‘광주의 어른’으로 불린다. 그는 무등산 역사를 기록하고 증언해 온 ‘무등산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1955년 호남 지역 최초 산악회인 ‘전남산악회’를 만들고, 이듬해 1956년에는 첫 등산대회인 ‘6·10만세 기념 무등산 등산 전국대회’를 여는가 하면 1958년에는 전남산악회와 전남대 산악부 출신들을 모아 무등산악회를 창립했다. 무등산악회 창립의 목적이 산악운동과 함께 무등산 살리기였다.

<무등산>과 <광주 1백년> 저자 박선홍 옹.
1976년 5월 첫 판이 나온 그의 저서 <무등산>은 무등산의 역사와 자연은 물론 전설과 풍속과 유물유적, 정자와 사찰 그리고 산악운동의 발자취에 이어 광복 전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어 온 무등산의 자연에 대해 속속들이 얘기해 주고 있다. 특히 무등산 보존에 대한 글에서 보이는 무등산에 대한 그의 애정은 절절할 정도다.

“1989년 산악단체와 민간단체들이 모여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를 만들고, 대표를 맡았어요. ‘무등산을 보호하자’는 자각 운동이었죠.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주워서 내려오자’, ‘취사하지 말고, 도시락을 가져가자’, ‘계곡에서 세제를 쓰지 말자’ 등 다섯 가지 캠페인을 벌였어요. 민주주의의 성지인 광주의 시민들이 이러면 되겠느냐 했어요. 차츰 호응도가 높아지더니 무보협의 캠페인 내용이 실현화됐어요. 특히 ‘취사 안 하기’는 모든 국·도립공원으로 확산됐어요.”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는 무등산을 제대로 보존하려면 무등산자락의 개인소유 땅을 공유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2001년 무등산공유화재단를 만들었다. 현재 공유화재단 소유로 등록된 땅은 무려 63만9,873㎡에 이른다.
그는 무등산뿐만 아니라 광주학의 대가로도 인정받고 있다. 광주학의 선구를 인정받아 자신이 이사장(1994~1999년)으로 재직했던 조선대에서 2011년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박선홍 옹은 현장을 누비며 채록한 개화기 이후의 기록물을 엮어 <광주 1백년> 책을 펴내기도 했다.

올해 우리나이 미수의 고령에도 광주 금남로 1가 1번지에 위치한 전일빌딩 6층 효성문화재단에 매일같이 출근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박선홍 옹은 지난 1월 15일 빛고을문화회관에서 자신의 저서인 <광주 1백년>(1994년간, 총3권)과 <무등산>(1998년간)에 관한 지적재산권을 광주문화재단에 기증했다. 이 행사에는 <광주 1백년>을 일본어로 번역한 일본인 히로시게(75)씨가 특별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 열린 대한산악연맹 창립50주년 행사 때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산악인 50인’에 선정된 바 있는 박선홍 옹은 무등산이 어떤 산이냐는 질문에 “둥글고 덕스럽고 믿음직스런 산”이며 다시 한 번 애정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