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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에 서니 두려웠다. 겨울비가 스며든 강물은 떨리고 있었다. 강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두근거리는 타인의 심장소리가 들려온다. 숲 속에 성긴 나뭇가지들 사이로 새가 날았다. 나는 숲에 숨어 있던 새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이렇게 강가에 섰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나는 많은 것을 잊고 살았다. 그것이 떨림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사랑한 사람들, 미워한 사람들. 이제는 모두 강물에 내리는 비처럼 스미고, 스며들어 같이 흐른다.
그때 그 사람들의 아픔이나 상처는 지금 아물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견디고 있을까. 강물은 그렇게 꼭 내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거울 같았다. 정작 나의 얼굴은 강물에 빠져버린 듯 보이지 않는다. 강은 나를 품지 않았다. 내가 강에 가지 않았으므로 강은 저만치 멀리서 흐르고 있었고, 나는 망연하게 섬진강을 바라만 보았다.
그 강가에 김용택(金龍澤·59) 시인이 서 있었다. 그의 시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저절로 배어나오는 숨결이었다. 섬진강 진매마을에서 태어나 민물고기처럼 그는 그렇게 살았다. 그가 요즘 관심을 가지는 환경 문제는 생래(生來)적인 것이다. 자신의 몸과 같은 것을 툭툭 건드리고 파내니, 몸이 아파서 난리치는 것이다. 정작 그의 시는 그 삶의 외피이고, 독자에게는 자신의 속살이다. 첫눈이 내리듯이 그의 시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에게 내려왔다. 그의 시를 읽으면, 한동안 나는 정말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의 짧은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출처 : 신동아 2007.10월호, 원재훈 시인의 작가열전, 섬진강 시인 김용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