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산짐승 멧돼지와는 많이 가까워졌다는 판단입니다. 멧돼지가 분탕질한 흔적만 보아도 놀라 가슴이 뛰었는데 이제는 차분하게 제가 지나는 소리를 내 길을 열어달라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러면 최고의 맹수로 군림하는 멧돼지들 대부분이 저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슬쩍 길을 비켜줍니다. 비가 많이 퍼붓는 날에는 성질을 부려 큰 소리로 겁을 주기도 합니다. 이때는 그들의 편한 쉼을 깨뜨리지 않고자 좀 멀더라도 제가 빙 돌아갑니다. 멧돼지들이 노는 모습을 꽤 가까이에서 여러 번 보았지만 아직 한 번도 바짝 다가가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오지는 못했습니다. 언제고 그들이 제 요청을 받아들여 사진모델이 되어주는 날 멧돼지와도 진정한 대화가 사작될 것입니다.
출처 : 섬진강 둘레산줄기에서 길을 찾다. 230-231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