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성 배경
이번 구간은 추풍령부터 등산길이 산경표에 의거 물길을 건너지 않고 산길을 따라 뺑 돌아가는 길이다. 따라서 산경표 관련 자료를 검토하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작성한 '북한-중국 국경 획정(劃定)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견하여 '백두산 천지가 우리 땅으로 다시 돌아온 사연'이라는 주제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북한과 중국은 1962년 10월 12일에 백두산 천지를 반분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조약을 맺음으로써 1712년에 조선과 청이 백두산 정계비를 기준으로 불분명하게 국경을 나눈 뒤 수 백 년 간 지속되어온 국경분쟁을 종식시켰다. 그런데 이 조약은 양국이 비밀로 하기로 합의한 관계로 최근에야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결론은 북한과 중국 국경 획정으로 여의도의 약 400배의 영토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여러 봉우리와 천지의 절반이상을 되찾았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작성건명 및 주요내용
- 건명 : 백두산 천지가 우리 땅으로 돌아온 사연
- 작성 방향 : 북중 국경 획정 전사(前史), 국경 협상의 배경, 협정 내용, 특징, 평가
- 주요 내용
1712년 백두산 정계비 설치(조선:청나라)
1909년 일본의 조선 감점시 간도협약(일본:청나라)
1962년 북한-중국 국경조약 체결(평양)
- 천지개요 : 수면높이 약 2,190m, 면적 9.165㎢. 둘레 14.4km, 평균수심 213.3m, 최대수심 384m, 저수량 약 20억톤 산상호수
3. 북중 국경 확정 전사(前史)
1) 백두산 정계비 설치(1712년)
- 청나라 관리 목극동은 조선 관리 박권과 함께 백두산에 올라 해발 2,200m 지점에 국경 경계를 나타내는 정계비를 세움
- 그러나 두만강 물줄기를 잘못 짚어, 백두산 천지를 전부 중국령으로 기재하여, 국경분쟁의 화근이 발생함
2) 간도 협약(1909년)
- 조선을 점령한 일본은 1712년에 세운 백두산정계비 지도대로 백두산 천지를 청나라에 넘겨 주고, 대신에 만주철도 부설권을 획득함.
4. 북한-중국 국경조약 체결내용(1962년)
1) 1962년 10월 12일, 중국 총리 주은래(저우언라이)가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
- 김일성 주석과 압록강-백두산천지-두만강을 경계로 하여 국경을 확정하는 '북중 국경조약'을 맺음
2) 체결 내용
- 압록강 최상류에서 시작하여 백두산 천지를 반으로 가르고, 두만강 상류까지 이어진 총 45km를 확정
- 28개의 국경 경계 팻말을 세움
- 천지면적은 반분하기로 하였으나, 실제는 북한 54.5%, 중국 45.5% 면적으로 나누어짐
- 압록강, 두만강 사이의 큰 섬들이 북한에 유리하게 확정(대표적으로 황초평, 비단섬, 위화도)
- 조약 내용은 국민 반발을 고려 비공개키로 함
3) 체결 결과
- 1909년 간도협약 때 보다 1,200㎢ 면적을 북한에 내줌. 여의도 면적의 413배를 중국이 양보(여의도면적 : 2.9㎢)
- 무엇보다도 한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여러 봉우리와 천지를 되찾았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임.
5. 향후 전망
1) 한반도 통일 후에도 북중 국경조약은 계승될 것으로 보임.
- 국경조약은 국가 승계에 의하여 그 효력에 영향을 받지 아니함(비엔나협약 조약관례)
- 1992년 8월 한중 수교시 "영토 보전의 상호존중"을 천명함.
[작성 참고자료] 북한-중국 국경 획정(劃定)에 관한 연구(2014년 이종석 전통일부장관 지음.세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