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청 자료 요약) 우리나라 행정구역 변천사
1. 통일신라 ; 9주 5소경 제도 (신라 신문왕)
- 삭주, 명주, 한주, 웅주, 상주, 전주, 무주, 강주, 양주
-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5소경(중원경/충주, 북원경/원주, 서원경/청주, 남원경/남원, 금관경/김해)
5소경 설치 이유 ; 수도가 동남쪽에 치우쳐 있는 것을 보완
2. 고려시대 : 12목 체제 (고려 성종)
- 12목(광주, 양주, 충주, 청주, 공주, 진주, 상주, 전주, 나주, 승주, 황주, 해주)
-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전국을 크게 5도와 양계, 경기로 나누고, 그 안에 3경 4도호부, 8목을 비롯하여 군, 현과 진을 설치하였다.
일반 행정구역인 5도에는 안찰사를 파견하였고, 국경지대에는 양계를 설치하고 병마사를 파견하였다.
3. 조선시대 8도 체제 완성(조선 태종)
- 8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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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에 고을의 크기에 따라 부,목,군,현을 설치하였다. 또한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구역이던 향.소.부곡이 모두 해방되어 일반 군.현에 편입되었고, 전국의 모든 군.현에는 수령을 파견하였다. 수령은 국왕을 대신하여 지방의 행정,사법,군사원을 장악하고, 농업발전, 교육진흥, 부세수취, 치안확보 등의 일을 수행하였는데, 이를 수령 7사라고 한다. 수령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는 만큼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였기 때문에, 각 도에 관찰사를 파견하여 수령을 지휘 및 감독하도록 하고, 수시로 암행어사를 보내 민정을 살피도록 하였다.
4. 조선시대 13도 체재 개편(1896년 조선 고종)
-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1897년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10월에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함
강원도 역사
한반도의 동북쪽 중간지역에 위치한 강원도는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단형(短型)에 가까운 지형으로, 동쪽으로는 해안선을 따라 동해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서남쪽과 서쪽으로는 충청북도와 경기도에 접해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황해도, 북쪽으로는 함경남도와 접해 있다. 또한 한반도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태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높은 산, 깊은 골짜기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전체 면적의 약 82%가 산지인 지역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큰 강인 남·북한강과 낙동강이 강원도에서 발원하고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치악산 등 유명한 산들이 도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지녀 일찍부터 인류의 생활이 시작되었던 강원도 지역은 고조선시대에는 예맥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고대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어 중앙정부의 권력이 지방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삼국시대부터는 영서지역이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기도 하였으나, 고구려의 세력이 강하였던 3∼5C경에는 강원도 전체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고, 신라의 세력이 강성하였던 6C경부터는 신라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지방행정구역으로서 강원도의 영역 파악이 가능하게 되었던 시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확대된 영역을 지배하기 위해 새로운 지방행정조직인 9주를 설치한 신문왕 5년(685)경부터였다.
당시 설치되었던 9주는 삭주, 명주, 한주, 웅주, 상주, 전주, 무주, 강주, 양주 등이었는데, 이 중에서 강원도 지역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서의 삭주와 영동의 명주로 구획되어 21개 속군 51개 속현을 관할하였으며, 특별행정구역인 북원경이 삭주의 관내에 설치되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강원도 지역에 설치되었던 삭주와 명주의 속군 현을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삭주와 명주의 속군·현황
삭주와 명주의 속군·현황
주명
주치소
속군
속현
삭주
춘천
-
내제군(제천)
내령군(영주)
압산군(풍기)
가평군 (가평)
양록군(양구)
낭천군(화천)
대양군(회양)
익성군(금성)
기성군(양구)
연성군(회양)
삭정군(안변)
정천군(덕원)
녹효(홍천).황천(횡성).지평(횡성)
청풍(청풍)적산(단양)
선곡(영주.예안) .왕마(봉화)
인풍(풍기)
준수(가평)
희제(인제).치도(서화).삼령(방산)
-
수천(회양).문등(회양)
-
통구(금성)
단송(회양).질운(회양).희령(회양)
서곡(안변).난산(안변).상음(안변).청산(안변).익계(안변)
산산(덕원).송산(덕원).유거(덕원)
소계
12
26
명주
강릉
-
곡성군(청송)
야성군(영덕)
유린군(영덕.영해)
울진군(울진)
내성군(영월)
삼척군(삼척)
수성군(간성)
고성군(고성)
금양군(통천)
정선(정선).속제(양양,속초).지산(강릉).동산(양양)
연무(청송.안덕)
진안(청송).적선(청송)
해아(영일)
해곡(울진)
자춘(단양.영춘)백오(평창).주천(영월)
죽령(삼척).만경(삼척).우계(강릉).파리(삼척)
동산(간성).익령(양양)
동산(간성).익령(양양)
환가(고성).편험(통천)
습계(흡곡).제상(벽산).임도(통천).파천(안변).학포(안변)
소계
9
25
합계
21
51
<표 1>에서와 같이 12개 속군과 26개 속현을 관할한 삭주의 영역은 현재의 춘천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횡성, 서쪽으로는 경기도 가평,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영주, 북쪽으로는 함경남도 덕원까지를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9개 속군과 25개 속현을 관할한 명주의 영역은 강릉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동해안까지,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영해, 영덕, 청송, 서쪽으로는 평창 정선, 북쪽으로는 함경남도 안변까지를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따라서 9주제에서의 강원도 지역은 동쪽으로는 동해안 지역을 비롯하여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영덕에서 청송, 영주, 풍기를 연결하는 지역과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단양 제천에서 원주, 경기도, 가평, 철원, 회양을 연결하는 지역, 북쪽으로는 함경남도 덕원, 안변에서 회양을 연결하는 지역까지 포함하였으므로, 삭주와 명주는 현재의 강원도 지역과 경상북도, 충청북도, 함경남도의 일부 지역까지 그 영역으로 관할하고 있었다. 신라의 9주제에서 삭주와 명주의 2개 주 21개 속군 56개 속현 1소경으로 구획되었던 강원도 지역의 지방행정제도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중앙정부에서 외관을 파견하여 각 지방을 직접 통치할 수 없었다. 고려 태조는 명목상으로는 왕이었지만, 그의 왕권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지방은 여전히 향호들의 통제하에 놓여 있었고, 중앙정부에서는 각 지방에 지방관을 직접 파견하여 통치할 수 없었다.
지방관의 파견은 고려의 왕권이 확립되는 성종대에 이르러 가능하게 되었다. 즉, 성종 2년(983) 중앙관제를 정비하고, 전국을 12목으로 편성하여 지방관을 파견함으로써 직접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12목 설치 이전에는 금유 조장과 전운사가 각 지방에 파견되었다. 금유와 조장은 향호들이 통치하고 있던 각 지방에 파견되었던 임시 사자로 해당 지역에서의 조부의 징수가 주된 임무였으며, 전운사는 지방에서 징수한 조부를 개경으로 운송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즉, 향호들이 징납하고 금유 조장이 수집한 조세를 제도전운사가 중앙으로 전운하였던 것이다.
당시 설치된 12목은 광주, 양주, 충주, 청주, 공주, 진주, 상주, 전주, 나주, 승주, 황주, 해주 등으로 전국을 12개 행정구역으로 편성하고, 그곳에 행정장관을 파견하여 지방 호족세력을 통제하는 동시에 지역의 핵심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이와 더불어 국경지대인 동북계와 서북계에는 군사상의 필요에 의해 주진사가 파견됨으로써, 고려초기의 지방행정은 비로소 민정적 행정적인 12목과 군정적인 제주진사의 이원체제로 성립되었다.
즉, 남도의 민정적 행정적인 12목체제와 북쪽 국경지대인 동북계와 서북계에는 군정적인 체제로 편성하여 통치하였던 것이다. 12목체제하에서의 강원도 지역을 신라의 9주 5소경 지역과 비교하여 살펴보면〈표 2〉와 같다.
신라 9주 5소경과 12목 지역의 비교
신라 9주 5소경과 12목 지역의 비교
현재지역
9주 5소경
12목
비고
강원도
삭주
명주
북원경
-
-
-
소멸(춘천)
소멸(강릉)
소멸(원주)
경기도
한주
-
광주
양주
신설
황해도
-
-
황주
해주
신설
신설
충청도
중원경
서원경
웅주
충주
청주
공주
전라도
전주
-
무주
-
남원경
전주
나주
-
승주
-
신설
소멸(광주)
신설
소멸(남원)
경상도
강주
상주
양주
금관경
진주
상주
-
-
소멸(양산)
소멸(김해)
<표 2>에서와 같이 전국을 12목으로 편성하면서 남도 지역에는 기존의 거점 지역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또는 소멸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주목을 설치하였으며, 황해도 지역에는 새로운 거점 주목을 신설하였다. 그러나 서북계 지역인 평안도 지역 및 강원도 지역인 동북계 지역에는 삭주, 명주, 북원경이 소멸되었지만, 이에 대한 변동 사항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전국을 12목으로 편성하여 통치하였던 성종 2년(983)의 지방행정제도 개편은 주로 남도 지역에 해당되는 개편으로, 군정지역인 동북계 지역의 강원도 지역과 서북계 지역의 평안도 지역과는 관계가 없었던 개편이었다. 즉, 북쪽 변경의 거란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서북계의 영주에는 안북대도호부사, 순주 위주 은주 숙주 자주에는 방어사가 파견되었으며, 동북계의 명주는 하서부로 개편되었다.
이와 같은 남도의 12목 행정체제와 동·서북계의 군사체제 중심의 이원적인 지방제도는 성종 14년(995)에 큰 변화가 있었으니, 그것은 당의 제도를 그대로 채용한 외관직의 절도사체제로의 재편과 10도제로의 전환이었다. 즉, 행정체제인 12목이 군사적 통치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절도사체제로 개편됨에 따라 종래의 12목 지역에 12절도사가 설치되었으며, 그 외의 지역에는 2유수 5도호부사 7도단련사 11단련사 15자사 21방어사 7진장 등 총 80명의 외관이 파견되었다.
강원도 지역은 교주, 춘주, 동주, 명주, 척주 등에 5명의 단련사와 고주(고성), 연주(삭주) 등에 2명의 방어사 등 모두 7명의 외관이 파견되었다.
이와 더불어 전국의 행정구역을 10도로 나누는 개편을 단행하였다. 이때 설치된 10도는 관내도, 중원도, 하남도, 강남도, 해양도, 영동도, 영남도, 산남도, 삭방도, 패서도 등으로 128주 449현 7진이 소속되었는데, 7주 62현을 관할하였던 삭방도는 대체적으로 현재의 강원도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10도제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지방행정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주군의 외관들이었다. 전국을 지리적으로 10도로 구획한 의도를 국초부터 전운사가 파견된 막연하고 임시적인 여러 도를 확실하고 고정적인 구역으로 만든 것으로 파악하더라도, 10도가 설치된 이후에도 중심이 된 것은 12절도사를 비롯한 외관이었으며, 10도는 주군을 관할하는 상급 행정기관으로서 기능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10도는 중앙과 주군 사이의 중간적인 행정구역이 아니라, 조부전운의 방면과 순찰구획으로서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10도제는 종래 12목체제의 주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에서 주를 포함하는 광역의 지방제도로의 전환으로, 고려의 집권체제가 정비 ·강화되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지방행정제도로서의 도제로는 정착되지 못하였다.
성종 14년(995)에 개편된 외관직의 절도사체제는 목종 8년(1005)에 이르러 남도에는 12절도사 4도호부만을, 동·서북계에는 방어진사, 현령, 진장만을 남겨두는 등 전국의 관찰사, 도단련사, 단련사, 자사를 폐지함으로써 절도사체제는 서서히 민정적인 체제로 변화하게 되었다. 또한, 현종 3년(1012)에는 동경유수를 파하고 경주방어사를 설치하면서 12주의 절도사를 폐지하고 5도호부와 75도안무사를 두었고 현종 9년(1018)에는 안무사를 혁파하고 4도호부 8목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으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군사적인 절도사체제는 남도의 민정적인 목, 지주, 부군사, 현령체제로 전환되었으며, 변경지역에는 방어사 진장만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현종 9년의 외관제 개편으로 전국에 파견된 외관의 숫자는 성종 14년의 80명에서 116명으로 증가됨으로써, 집권적 지배체제가 강화되는 등 고려 외관제의 기틀이 이때 확립되었다. 이후 고려의 지방행정제도는 현종년간에 전국을 경기와 5도 양계로 구분하여 그 안에 4경 4도호부 8목을 설치하고, 그 밑에 15부 129군 335현 29진을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지방 행정체제로 개편되었다. 이때의 5도는 민정체제인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교주도, 서해도였고, 양계는 군정체제인 동계와 북계였다.
강원도 지역은 대체로 태백산맥 동쪽인 영동지방의 대부분 지역과 함경남도 定平 아래 지역이 동계에 포함되었으며, 양광도에 포함되어 있던 영서 남부지역 일부를 제외한 영서지방의 대부분이 교주도에 포함되었다. 강원도의 대부분이 포함되었던 동계와 교주도의 행정조직은 동계는 1도호부 9군 8현 10진의 주현과 17속현으로, 교주도는 3군의 주현과 25속현 등 1도호부 12군 8현 10진의 주현과 39속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5도 양계에는 고려중기부터 지방장관인 5도의 안찰사와 양계의 병마사가 파견되어 관할 군현을 통치함으로써 민정적인 5도와 군사적인 양계의 이원체제는 고려말까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한반도의 동북쪽 중간지역에 위치한 강원도는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단형(短型)에 가까운 지형으로, 동쪽으로는 해안선을 따라 동해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서남쪽과 서쪽으로는 충청북도와 경기도에 접해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황해도, 북쪽으로는 함경남도와 접해 있다. 또한 한반도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태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높은 산, 깊은 골짜기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전체 면적의 약 82%가 산지인 지역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큰 강인 남·북한강과 낙동강이 강원도에서 발원하고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치악산 등 유명한 산들이 도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지녀 일찍부터 인류의 생활이 시작되었던 강원도 지역은 고조선시대에는 예맥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고대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어 중앙정부의 권력이 지방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삼국시대부터는 영서지역이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기도 하였으나, 고구려의 세력이 강하였던 3∼5C경에는 강원도 전체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고, 신라의 세력이 강성하였던 6C경부터는 신라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지방행정구역으로서 강원도의 영역 파악이 가능하게 되었던 시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확대된 영역을 지배하기 위해 새로운 지방행정조직인 9주를 설치한 신문왕 5년(685)경부터였다.
당시 설치되었던 9주는 삭주, 명주, 한주, 웅주, 상주, 전주, 무주, 강주, 양주 등이었는데, 이 중에서 강원도 지역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서의 삭주와 영동의 명주로 구획되어 21개 속군 51개 속현을 관할하였으며, 특별행정구역인 북원경이 삭주의 관내에 설치되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강원도 지역에 설치되었던 삭주와 명주의 속군 현을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삭주와 명주의 속군·현황
주명 | 주치소 | 속군 | 속현 |
---|---|---|---|
삭주 | 춘천 |
- |
녹효(홍천).황천(횡성).지평(횡성) |
소계 | 12 | 26 | |
명주 | 강릉 |
- |
정선(정선).속제(양양,속초).지산(강릉).동산(양양) |
소계 | 9 | 25 | |
합계 | 21 | 51 |
<표 1>에서와 같이 12개 속군과 26개 속현을 관할한 삭주의 영역은 현재의 춘천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횡성, 서쪽으로는 경기도 가평,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영주, 북쪽으로는 함경남도 덕원까지를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9개 속군과 25개 속현을 관할한 명주의 영역은 강릉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동해안까지,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영해, 영덕, 청송, 서쪽으로는 평창 정선, 북쪽으로는 함경남도 안변까지를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따라서 9주제에서의 강원도 지역은 동쪽으로는 동해안 지역을 비롯하여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영덕에서 청송, 영주, 풍기를 연결하는 지역과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단양 제천에서 원주, 경기도, 가평, 철원, 회양을 연결하는 지역, 북쪽으로는 함경남도 덕원, 안변에서 회양을 연결하는 지역까지 포함하였으므로, 삭주와 명주는 현재의 강원도 지역과 경상북도, 충청북도, 함경남도의 일부 지역까지 그 영역으로 관할하고 있었다. 신라의 9주제에서 삭주와 명주의 2개 주 21개 속군 56개 속현 1소경으로 구획되었던 강원도 지역의 지방행정제도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중앙정부에서 외관을 파견하여 각 지방을 직접 통치할 수 없었다. 고려 태조는 명목상으로는 왕이었지만, 그의 왕권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지방은 여전히 향호들의 통제하에 놓여 있었고, 중앙정부에서는 각 지방에 지방관을 직접 파견하여 통치할 수 없었다.
지방관의 파견은 고려의 왕권이 확립되는 성종대에 이르러 가능하게 되었다. 즉, 성종 2년(983) 중앙관제를 정비하고, 전국을 12목으로 편성하여 지방관을 파견함으로써 직접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12목 설치 이전에는 금유 조장과 전운사가 각 지방에 파견되었다. 금유와 조장은 향호들이 통치하고 있던 각 지방에 파견되었던 임시 사자로 해당 지역에서의 조부의 징수가 주된 임무였으며, 전운사는 지방에서 징수한 조부를 개경으로 운송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즉, 향호들이 징납하고 금유 조장이 수집한 조세를 제도전운사가 중앙으로 전운하였던 것이다.
당시 설치된 12목은 광주, 양주, 충주, 청주, 공주, 진주, 상주, 전주, 나주, 승주, 황주, 해주 등으로 전국을 12개 행정구역으로 편성하고, 그곳에 행정장관을 파견하여 지방 호족세력을 통제하는 동시에 지역의 핵심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이와 더불어 국경지대인 동북계와 서북계에는 군사상의 필요에 의해 주진사가 파견됨으로써, 고려초기의 지방행정은 비로소 민정적 행정적인 12목과 군정적인 제주진사의 이원체제로 성립되었다.
즉, 남도의 민정적 행정적인 12목체제와 북쪽 국경지대인 동북계와 서북계에는 군정적인 체제로 편성하여 통치하였던 것이다. 12목체제하에서의 강원도 지역을 신라의 9주 5소경 지역과 비교하여 살펴보면〈표 2〉와 같다.
신라 9주 5소경과 12목 지역의 비교
현재지역 | 9주 5소경 | 12목 | 비고 |
---|---|---|---|
강원도 | 삭주 명주 북원경 |
- - - |
소멸(춘천) 소멸(강릉) 소멸(원주) |
경기도 | 한주 - |
광주 양주 |
신설 |
황해도 | - - |
황주 해주 |
신설 신설 |
충청도 | 중원경 서원경 웅주 |
충주 청주 공주 |
|
전라도 | 전주 - 무주 - 남원경 |
전주 나주 - 승주 - |
신설 소멸(광주) 신설 소멸(남원) |
경상도 | 강주 상주 양주 금관경 |
진주 상주 - - |
소멸(양산) 소멸(김해) |
<표 2>에서와 같이 전국을 12목으로 편성하면서 남도 지역에는 기존의 거점 지역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또는 소멸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주목을 설치하였으며, 황해도 지역에는 새로운 거점 주목을 신설하였다. 그러나 서북계 지역인 평안도 지역 및 강원도 지역인 동북계 지역에는 삭주, 명주, 북원경이 소멸되었지만, 이에 대한 변동 사항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전국을 12목으로 편성하여 통치하였던 성종 2년(983)의 지방행정제도 개편은 주로 남도 지역에 해당되는 개편으로, 군정지역인 동북계 지역의 강원도 지역과 서북계 지역의 평안도 지역과는 관계가 없었던 개편이었다. 즉, 북쪽 변경의 거란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서북계의 영주에는 안북대도호부사, 순주 위주 은주 숙주 자주에는 방어사가 파견되었으며, 동북계의 명주는 하서부로 개편되었다.
이와 같은 남도의 12목 행정체제와 동·서북계의 군사체제 중심의 이원적인 지방제도는 성종 14년(995)에 큰 변화가 있었으니, 그것은 당의 제도를 그대로 채용한 외관직의 절도사체제로의 재편과 10도제로의 전환이었다. 즉, 행정체제인 12목이 군사적 통치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절도사체제로 개편됨에 따라 종래의 12목 지역에 12절도사가 설치되었으며, 그 외의 지역에는 2유수 5도호부사 7도단련사 11단련사 15자사 21방어사 7진장 등 총 80명의 외관이 파견되었다.
강원도 지역은 교주, 춘주, 동주, 명주, 척주 등에 5명의 단련사와 고주(고성), 연주(삭주) 등에 2명의 방어사 등 모두 7명의 외관이 파견되었다.
이와 더불어 전국의 행정구역을 10도로 나누는 개편을 단행하였다. 이때 설치된 10도는 관내도, 중원도, 하남도, 강남도, 해양도, 영동도, 영남도, 산남도, 삭방도, 패서도 등으로 128주 449현 7진이 소속되었는데, 7주 62현을 관할하였던 삭방도는 대체적으로 현재의 강원도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10도제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지방행정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주군의 외관들이었다. 전국을 지리적으로 10도로 구획한 의도를 국초부터 전운사가 파견된 막연하고 임시적인 여러 도를 확실하고 고정적인 구역으로 만든 것으로 파악하더라도, 10도가 설치된 이후에도 중심이 된 것은 12절도사를 비롯한 외관이었으며, 10도는 주군을 관할하는 상급 행정기관으로서 기능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10도는 중앙과 주군 사이의 중간적인 행정구역이 아니라, 조부전운의 방면과 순찰구획으로서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10도제는 종래 12목체제의 주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에서 주를 포함하는 광역의 지방제도로의 전환으로, 고려의 집권체제가 정비 ·강화되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지방행정제도로서의 도제로는 정착되지 못하였다.
성종 14년(995)에 개편된 외관직의 절도사체제는 목종 8년(1005)에 이르러 남도에는 12절도사 4도호부만을, 동·서북계에는 방어진사, 현령, 진장만을 남겨두는 등 전국의 관찰사, 도단련사, 단련사, 자사를 폐지함으로써 절도사체제는 서서히 민정적인 체제로 변화하게 되었다. 또한, 현종 3년(1012)에는 동경유수를 파하고 경주방어사를 설치하면서 12주의 절도사를 폐지하고 5도호부와 75도안무사를 두었고 현종 9년(1018)에는 안무사를 혁파하고 4도호부 8목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으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군사적인 절도사체제는 남도의 민정적인 목, 지주, 부군사, 현령체제로 전환되었으며, 변경지역에는 방어사 진장만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현종 9년의 외관제 개편으로 전국에 파견된 외관의 숫자는 성종 14년의 80명에서 116명으로 증가됨으로써, 집권적 지배체제가 강화되는 등 고려 외관제의 기틀이 이때 확립되었다. 이후 고려의 지방행정제도는 현종년간에 전국을 경기와 5도 양계로 구분하여 그 안에 4경 4도호부 8목을 설치하고, 그 밑에 15부 129군 335현 29진을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지방 행정체제로 개편되었다. 이때의 5도는 민정체제인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교주도, 서해도였고, 양계는 군정체제인 동계와 북계였다.
강원도 지역은 대체로 태백산맥 동쪽인 영동지방의 대부분 지역과 함경남도 定平 아래 지역이 동계에 포함되었으며, 양광도에 포함되어 있던 영서 남부지역 일부를 제외한 영서지방의 대부분이 교주도에 포함되었다. 강원도의 대부분이 포함되었던 동계와 교주도의 행정조직은 동계는 1도호부 9군 8현 10진의 주현과 17속현으로, 교주도는 3군의 주현과 25속현 등 1도호부 12군 8현 10진의 주현과 39속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5도 양계에는 고려중기부터 지방장관인 5도의 안찰사와 양계의 병마사가 파견되어 관할 군현을 통치함으로써 민정적인 5도와 군사적인 양계의 이원체제는 고려말까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2. 조선시대의 강원도
1392년 7월 17일 개성 수창궁에서 즉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는 정치적인 안정을 위해 국호를 그대로 고려라 하고, 모든 의장법제도 고려의 것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교서를 반포하였다. 이후 정치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정치적으로는 왕조 교체에 따른 수도의 이전과 경제개혁을 위한 과전법의 실시로 인해 경기도의 행정구역이 조정됨에 따라 경기도와 인접한 다른 지역의 행정구역도 재조정해야 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태조 3년(1394) 6월 도평의사사에서 행정구역의 일부 개편을 건의하면서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로 고칠 것을 청한 후, 그다음 해인 태조 4년(1395) 영동의 강릉도와 영서의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로 합도함으로써 '강원도'라는 도명이 공식적인 행정구역으로 확정되었다.
강원도명이 확정된 이후 강원도의 행정구역은 조선초기에 견아상입지를 정리하기 위한 조치로 정종 1년(1399) 원주의 속현인 영춘과 충청도 충주의 관할인 영월을 맞바꾸고, 태종 13년(1413)에는 가평과 조종을 분할하여 경기도로 이속시키는 대신 경기도의 이천을 강원도로 이속하였으며, 세종 16년(1434)에는 강무의 지대와 요역에 대한 이중 부담으로 인한 폐단이 심하였던 철원과 주정에 대한 지대의 폐단이 심하였던 안협을 강원도로 이속하는 등 몇 차례 이동이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편, 과전법 실시에 따른 행정구역의 재조정 외에도 각 지역의 역사적인 전통을 고려하면서 산천지세에 따른 합리적인 조정을 기준으로 하는 행정구역의 전국적인 조정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어 태종13년(1413)에는 강원도를 비롯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 영길(함경)도, 경기도의 8도체제로 완성되었다. 순조 30년(1830)경의 강원도는 동서 300리, 남북 800리에 달하였으며, 관할구역은 감영이 소재하고 있는 원주를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강릉의 해안까지 310리, 서쪽은 경기도 지평까지 70리, 서북쪽은 황해도 토산까지 525리, 남쪽은 충청도 제천까지 50리, 북쪽은 함경도 안변까지 597리의 거리에 달하였다.
소관 군현은 단종 2년(1454)에 편찬된《세종실록지리지》에는 1대도호부(강릉) 1목(원주) 4도호부(회양, 양양, 춘천, 삼척) 7군(평해, 통천, 정선, 고성, 간성, 영월, 평창) 11현(금성, 울진, 흡곡, 이천, 평강, 금화, 낭천, 홍천, 양구, 인제, 횡성) 등 24개 군현이었으나, 성종 5년(1474)에 반포한《경국대전》에는 세종16년(1434) 강원도로 이속된 철원과 안협이 도호부와 현으로 편제되어 1대도호부 1목 5도호부 7군 12현의 26군현체제로 확정되었다.
각 군현의 편제는 정3품 대도호부사가 관할하는 강릉대도호부, 정3품 원주목사가 관할하는 원주목, 종3품 도호부사가 관할하는 회양, 양양, 춘천, 철원, 삼척도호부, 종4품 군수가 관할하는 평해, 통천, 정선, 고성, 간성, 영월, 평창군, 종5품 현령이 관할하는 금성 울진 흡곡현, 종6품 현감이 관할하는 이천, 평강, 금화, 낭천, 홍천, 양구, 인제, 횡성, 안협현 등이었다.
강원도 26개 군현 중에서 읍격이 승격된 군현은 <표 3>에서와 같이 영월군과 이천현이었다. 영월군은 숙종 24년(1698) 노산군을 단종으로 추봉하고, 영월에 소재하고 있는 묘의 능호를 장릉으로 결정하게 되면서 그다음 해인 숙종 25년(1699) 판부사 최석정이 '영월군수를 장릉의 헌관으로 임명해야 하므로, 영월부사로 승격시켜 사체를 높일 것'을 청함에 따라 정3품 도호부사가 관할하는 영월부로 승격되었으며, 이천현은 임진왜란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이 이천으로 피난하여 머물면서 무군사를 설치하여 유망한 백성들을 위무하였던 인연으로 선조 41년(1608) 2월 왕위에 즉위하면서 정3품 도호부사가 관할하는 이천부로 승격되었다.
이와 같은 강원도의 행정체제는 고종 32년(1895)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실시할 때까지 부, 목, 군, 현의 읍격이·승격 강등되는 변화는 있었으나 26군현체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강원도청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