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를 떠나 북동진하는 백두대간 준령의 마루금은 덕유산의 상봉인 향적봉(1614m) 근처의 동엽령(1320m)을 지나 백암봉(1480m)을 고비로 내리막길에 들어 귀봉(1400m) 대봉(1190m)을 거쳐 빼재(일명 신풍령·930m)로 내려오더니 대간을 가로 넘는 고갯길을 내어준다.
빼재에서 오름세로 돌아선 마루금은 다시 수정봉(1030m) 삼봉산(1245m)까지 오른 뒤 급경사로 돌아서 소사고개(690m)로 곤두박질하는데 삼도(경북 충북 전북)가 만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삼도봉(1176m)은 이 내리닫이 마루금이 고개의 바닥을 때리고 대덕산(1290m)을 지나 기세좋게 하늘로 반등하는 오르막에서 만나는 풍치 좋은 봉우리다.
○ 전라-충청-경상 주민 매년 10월 화합축제
대덕산을 경유해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마루금을 타기 위해 소사고개(690m)를 찾았다. 이 고개는 전북 무주(무풍면)와 경남 거창(고제면)을 잇는 1089번 지방도로가 통과하는 길목. 그런데 지도를 보니 좀 특별한 점이 있었다. 도 경계선이 대간의 마루금을 벗어나 북사면(무주 쪽)으로 약간 처져 있다. 마루금을 도나 군의 경계로 삼는 일반율을 벗어난 것이다.
어쨌거나 소사고개를 지붕 삼아 고개 양편에서 두런두런 한데 어울려 살아온 소사동, 지경내, 부흥동 등 세 마을은 전라도와 경상도로 두 동강난 상태다. 마을사람들은 도경계로 삼은 도랑물도 나눠 마시고 경조사에 서로 부르는 것은 물론 친목계도 함께할 만큼 내내 가까이 지내왔는데도. 경계선의 봉계리(거창군 고제면) 이장 박봉록(71) 씨는 “부흥동에는 재 넘어 소사동(거창)에 땅을 갖고 게서 농사지으며 세금을 거창군에 내는 출입경작민도 여러 사람 된다”고 말했다.
도경계선이 지나는 부흥동(무주군 무풍면)의 버스정류장을 보면 더 답답하다. 거창과 무주의 시내버스가 각각 예까지만 운행하고 모두 차를 돌려 돌아간다. 삼도화합을 기원하는 기념탑을 세운 삼도봉이 그리 멀지 않고 매년 10월이면 삼도화합 행사까지 열지만 행정은 이렇듯 거창과 무주를 단절시킨다.
○ 봄볕에 녹기 시작한 눈… 희뿌연 山景
소사마을을 뒤로하고 오르기 시작한 대간의 마루금 산행. 길은 대덕산과 덕산재, 2000년 터널개통 후 고갯길이 사라진 부항령을 지나 삼도봉까지 이어진다. 무주 땅을 왼편에 두고 오른발로 거창 땅(경남)을 밟으며 시작한 산행은 대덕산 근방에 이르러서는 오른발로 김천 땅(경북)을 밟는다. 그러다 마침내 삼도봉에 이르러서는 전북 경북 충북 삼도의 땅을 두루 밟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삼도봉의 삼도는 충북(영동군) 경북(김천시) 전북(무주군). 남한의 백두대간에는 ‘삼도봉’이 세 개나 된다. 지리산 날나리봉(1490m)과 대덕산 삼도봉(초점산·1250m), 그리고 여기 삼도봉인데 오늘 찾은 삼도봉과 나머지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나머지 둘은 경남과 전남·북, 전북과 경남·북 등 경상과 전라, 두 지역의 경계인 데 반해 오늘 찾은 삼도봉은 경상 전라 충청 등 세 지역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한시대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경계였다니 삼도봉 가운데서도 으뜸이라 할 만하다.
온 산을 뒤덮은 눈이 봄볕 아래 녹기 시작한 햇볕 따사로운 봄날의 삼도봉 정상. 봄볕 아래 증발한 습기로 주변 산경은 희뿌옜다. 그 속에서 대간의 마루 금을 짚다가 동북향에서 불쑥 솟은 산 하나를 찾았다. 황악산(1111m)이다. 그 산줄기 따라가면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추풍령 고개다.
◇맛집=김천시 지례면은 오래전부터 이름난 토종 흑돼지(꺼먹돼지) 집산지. 면사무소가 있는 교리에는 흑돼지 전문식당이 12곳이나 있다. 흑돼지는 쫄깃한 육질과 담백한 맛이 특징. ‘장영선 지례원조 삼거리식당’은 50여 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식당으로 장 씨는 18년째 영업 중. 소금구이(목살 삼겹살)와 양념불고기가 1인분(200g)에 6000원. 시래깃국(혹은 된장찌개)은 무료. 설날 하루만 쉬며 매일 오후 10시까지 영업. △찾아가기=물한계곡∼49번 지방도∼하도대 삼거리∼901번 지방도∼구성면(김천시)∼579번 지방도∼901번 지방도∼3번 국도∼지례면사무소. 054-435-0067
빼재∼대덕산∼덕산재∼삼도봉∼우두령 간 37.7㎞
산은 고을과 고을을 구분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조선 태종 때인 1414년 조정에서는 나라 땅을 팔도로 나누면서 하삼도, 즉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의 경계를 백두대간의 어느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삼도록 했다. 그리고 그 산봉우리를 삼도봉이라 했다.
당시 삼도봉을 삼도의 경계로 삼은 것은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산을 경계로 생활풍습과 음식문화를 달리하고 있었던 점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다.‘산이 사람을 가르고 물이 사람을 모은다’는 산경표의 기본 인식이 그 바탕에 깔린 것이다. 인위적인 ‘가름’이 아니라 자연적인, 즉 지형지세에 따라 수천년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고을간 고유의 문화권이 형성된 것을 기초로 해서 나라의 땅을 행정 편의적으로 구분했던 것이다.
삼도봉을 중심으로 덕유산, 대덕산, 황악산을 잇는 백두대간이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의 경계선이 됐고, 삼도봉∼민주지산 능선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선이 된 것이다. 삼국시대 당시는 삼도봉과 나란히 이어져 있는 민주지산을 중심으로 신라와 백제가 격돌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는 동북쪽으로 금물현(김천), 길동현(영동), 소라현(황간)을 영역으로 삼았고 백제는 무산현(무주)을 영역으로 삼아 영역 다툼을 벌였던 것이다.
부항령에서 첫날 산행을 마치고 이튿날 계속해서 삼도봉으로 향한다. 이곳 삼도봉은 백두대간 세 군데의 삼도봉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봉우리다. 나머지 두 군데의 봉우리는 대략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데 비해 이곳은 500년 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런 역사적인 삼도봉 정상은 그러나 지나칠 정도의 대규모 상징탑이 세워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경북 김천시(옛 금릉군)와 전북 무주군, 충북 영동군이 삼도의 화합을 기린다며 대형 석조물을 세워 놓아 흉물스러울 정도다.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도봉 (1,172m)에서 서쪽으로 석기봉 (1,200m), 민주지산 (1,242m), 각호산 (1,176m)이 나란히 이어진다. 민주지산은 충청도 쪽에서는 산세가 민두름하다고 해서‘민두름산’이라고 불렀다. <동국여지승람> 에는 민주지산의 원래 이름이 백운산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민두름산'이 한자화되는 과정에서 민주지산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지산 영동쪽으로는 남한의 마지막 원시림 지대라는 물한계곡이 흐른다. 천연기념물의 보고이면서 아름다운 물굽이들이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삼도봉을 지나면서 대간은 해발 1,100m 대의 장쾌한 능선이 계속된다. 1,124m봉을 지나면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보이는 밀목령이다. 밀목령에서 잠시 여유를 보인 대간의 산세는 다시 1,089m봉을 지나면서 오르막길이다. 아기자기한 암릉을 지나 1,175m봉에 오르면 우두령이 멀리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화주산을 거쳐 이어지는 대간 마루금이 뚜렷하다.
화주산까지는 뚝 떨어지는 암릉을 지나 한동안 오름 짓을 해야 다. 화주산으로 가는 길에 외롭게 혼자서 백두대간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일행이 진주에서 왔다는 사실을 반기며 "혹시 인터넷에 올라 있는 '지리산' 글을 쓴 사람을 아느냐?" 고 묻는다. 필자가 그 글쓴이라고 밝히자 정색을 하며 반가워했다. 지리산 자락의 산청군 덕산 출신으로 지금은 한국원전연료 주식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하응수(홍보협력부장) 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마침 필자의 오랜 벗이 같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던 터라 반가움이 더했다. 그렇다. 백두대간은 우리네 삶이며, 터전이고, 만남의 장인 것이다.
석교산으로도 불리는 화주산 정상 1,207m에 섰다. 대간의 큰산들이 모두 조망되는 훌륭한 전망대 같다. 황악산과 김천의 너른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간은 화주봉에서부터는 남동쪽으로 고도를 낮춰가면서 우두령으로 이어진다. 우두령은 경북 김천시 구성면 마산리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를 잇는 고갯마루다. 이 고개 아래로 경부고속전철 터널공사가 한창이다.(이 터널은 99년 12월 개통됐다) 질매재라고도 불리는데 포장은 잘 돼 있으나 대중교통편이 없다. 마음 넉넉해 보이는 노부부의 더블캐빈 화물차 뒤칸을 얻어 타고 굽이굽이 우두령 고갯길을 내려오는 것으로 대덕산군의 산행을 마무리했다
세 번째가 바로 경북(김천), 충북(영동), 전북(무주)이 하나로 만나는 이 삼도봉이다. 삼도를 충청·경상·전라로 이해한다면 이곳이 실질적인 삼도봉이라 볼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도 나와 있듯이 이미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불렸으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치면 이 삼도봉은 ‘원조’인 셈이다.
황간 근처 상촌면에서 물한계곡을 따라간 곳에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그리고 전북 무주가 만나는 삼도봉이라는 민주지산이 있다.
“삼도봉 넘어가는 장꾼 보게. 무주장 보는 놈 짚신짝 꿰지고, 황간장 보러 가는 놈 줄달음친다”라는 이 지역 사람들의 노랫말 속에 남아 있는 삼도봉 정상에 고즈넉한 돌탑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고개를 넘는 나그네들이 발끝에 채는 돌을 주워서 하나씩 던져 쌓여 만들어진 것인데, 충청도의 것이 제일 컸고, 다음은 경상도, 가장 작은 것이 전라도의 것이었다. 어느 해 봄날 이곳에 놀러 왔던 전라도 사람이 그것을 보고 심술이 나서 가장 큰 충청도의 것을 무너뜨렸고, 그것을 본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의 것을 헐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전라도 사람이 다시 올라와 경상도의 것을 헐어버려 돌탑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생긴 지역감정을 타파하자고 세운 탑이 화합의 탑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삼도봉 넘어가는 장꾼 보게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5 : 충청도, 2012. 10. 5., 다음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