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19-16권) 완역 정본 택리지

카프리2 2019. 12. 3. 16:49

(땅통종주 산행후기를 사람과산에 매달 연재하고 있지만)

(택리지를 읽고 많은 부족함을 느낀다)

(일년에 두 번 정도 완역정본택리지를 읽고 조금이나마 그 뜻을 소화시켜야 한다)


 

 

■ 책을 읽은 배경 : 택리지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서  

 

 

 

■ 개 요

 

1. 읽은 날짜 : 2019. 11. 28(목) - 12. 3(화)

 

 

2. 글쓴이/출판사/페이지 : 이중환 지음. 안대회.이승용외 옮김 / 휴머니스트 / 557


 

3. 제목 : 완역 정본 택리지


 

4. 목차

 

해제, 택리지 서(이익,정언유)


서론


팔도론


복거론


결론


발문(이중환,목성관,목희경,이봉환,홍중인,홍귀범,정약용,정인보)

 

 

 

 

■ 지은이 : 이중환(1690-1756, 67세)

 

- 호는 청담, 청화산인

- 24세에 문과에 급제. 


■ 옮긴이 : 안대회


-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대동문화연구원 원장.


■ 번역에 참여하신 분들 : 9명

- 이승용외 8명(박사과정 참여자)


 

 

 

5. 책을 읽은 소감

 

- 명저인데, 앞으로 천천히 몇 번 읽으면서, 우리 팔도의 지리,생리,인심,산수를 나의 머리속에 흡수하고 소화시켜야 함.

- 최소 1년에 두 번은 읽어야 함.




 

6.  주요내용 요약(밑줄을 그은글 위주)


1) 완역정본택리지란

    이 책은 이중환의 택리지 200여 종에 이르는 이본 중, 선본 23종을 선정하여

    2012년부터 아홉 명의 한문학 전공 연구자와 함께 번역에 착수하여 6년만인 2018년도에 출판함

    정본을 먼저 만들고, 이른 저본으로 삼아 정확하게 번역하고 상세한 주석을 붙여 믿고 읽을 수 있는 번역서로 출간함.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박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2012년부터 세미나를 시작하여 2년에 걸쳐 초고를 완성하였고, 다시 1년 동안 전체 원고를 읽고 수정하였다. 그 후 2년 동안 원고를 묵혀두었다가 지난해 말부터 1년 정도 몰두하여 완성된 원고로 만들었다.


2) 이중환

  이중환 아버지는 도승지와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이진휴임

  실학자 성호 이익은 집안 할아버지

  1713년 24세의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 등을 역임

  청담은 1756년에 사망한 뒤 황해도 금천 설라산에 있는 부친이 잠든 곳에 묻힘.


3) 완역정본택리지를 출판하게 된 사유

  - 1912년 발행된 최남선의 광문회본이 텍스트에 과도하게 개입하여, 많은 어구를 자의적으로 수정하였고,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첨가하여 지은이의 의도를 왜곡


4) 팔도론 서설

곤륜산 한 줄기가 고비사막 남쪽으로 뻗다가 동쪽으로 향하여 의무려산이 된다. 의무려산에서 산줄기가 한바탕 크게 끊겨 요동 벌판이 되고, 요동 벌판을 건너 산줄기가 다시 솟구쳐 백두산이 된다. 이 산이 바로 산행경에서 말한 불함산이다. 백두산 정기가 북쪽으로 1000리를 뻗어가다 두 강을 끼고 남쪽으로 선회하여 영고탑이 되고, 등 뒤에서 하나의 맥이 뽑혀 나와 조선 산맥의 머리가 된다.


5) 지리

-  좋은 집터는?

무릇 사람은 양기를 받아서 살아가는데, 하늘의 햇볕이 양기를 주는 것이다. 하늘이 적게 보이는 곳에서는 결단코 살 수 없다. 이에 따라 들이 넓으면 넓을수록 집터는 더욱 아름답다. 햇볕과  달빛과 별빛이 항상 환하게 비치고, 바람과 비, 추위와 더위를 비롯한 기후가 충분히 알맞은 곳이면 인재가 많이 배출되고 질병도 적다.


- 가장 피해야 할 곳은?

사방의 산이 높이 솟구쳐 들을 내리누르고 있어서 해는 늦게 떳다가 일찍 지고, 밤에는 북두성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신령한 햇볕이 적어서 음기가 쉽게 서리면, 귀신이 나오는 숲과 도깨비 소굴이 되거나 아침저녁으로 남기(嵐氣,남기남)와 장기(瘴氣.장기장)가 사람을 쉽게 병들게 한다. 그러므로 산골에 살기가 들에 살기보다 좋지 못하다.


- 나라 안에서 가장 기름진 땅은?

전라도 남원과 구례, 그리고 경상도 진주와 성주 등이다. 여기는 논에 볍씨 한 말을 뿌리면 최상은 140두를 거두고, 다음은 100두를 거두며, 최하 80두를 거두거니와, 다른 고을은 그렇지 못하다.


6) 인심


- 이조전랑의 역할은?

우리나라의 관제는 먼 옛날과 달라서 비록 삼정승과 육판서를 두어 모든 관청을 감독하고 통솔하기는 하지만 대각(臺閣, 사헌부와 사간원)에 큰 무게를 두어서 풍문, 피혐, 처치의 법규를 만들어 오로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의론의 정사를 맡게 하였다.


내직과 외직을 임명하는 권한은 삼정승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오로지 이조에 속해 있다. 또 이조의 권한이 너무 커질까 염려하여 삼사(三司, 사헌부,사간원, 홍문관)의 관원을 추천할 때는 이조판서에게 맡기지 않고 이조낭관(郎官)에게 전담시켰다. 따라서 이조의 정랑(正郞)과 좌랑(佐郞)이 대각의 권력을 주도하게 되었다. 삼정승과 육판서가 높고 큰 관직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랑(이조 정랑과 좌랑)이 곧잘 삼사의 여러 신하를 부추켜 탄핵하게 하였다. 조정의 풍속이 염치를 숭상하고, 명예와 절도를 무겁게 여겨서 한 번 탄핵을 받으면 직책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조전랑의 권한은 삼정승에 버금갔다.


이것이 큰 벼슬과 작은 벼슬이 서로를 맞잡고, 높은 직책과 낮은 직책이 서로를 제어하는 방법이라 300년 동안 큰 권간(權奸)이 나타나지 않고, 꼬리가 커서 처리하기 어려운 근심*이 없었던 이유이다. 여기에는 고려에 임금이 약하고 신하가 강했던 폐단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없애려는 역대 임금의 의도가 깔려 있다.  

* 근심 : 신하의 권력이 강하여 군주가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음을 뜻하는 말로 <춘추좌씨전>에 나온다.


이 때문에 반드시 삼사에서 명망과 덕행이 있는 인재를 엄격하게 뽑아서 전랑으로 삼았다. 전랑으로 하여금 후임자를 천거하게 하고 이조판서에게 맡기지 않았다. 전랑이 가지는 권한을 무겁게 여겨서 한결같이 공론에 부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품계를 올릴 때면 반드시 전랑을 먼저 올리고 나서 차례대로 이조 관료의 품계를 올리고 직무를 부여했다. 그런뒤에야 다른 부서에 차례가 갔다. 한 번 전랑을 거친 사람은 큰 사고가 없다면 순탄하게 공경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므로 전랑은 명예와 이익이 함께 따라오는 자리라, 나이가 젊고 벼슬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바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제도를 시행한 지가 오래됨에 따라 전랑을 먼저 하고 뒤에 하는 문제와 전랑 자리에 가고 못 가고 하는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조 전랑이 없이지고 나타난 폐해


전랑 제도를 폐지하고 나니, 새로 벼슬길에 진출한 선비들은 통솔하는 사람이 없어져서 자기 마음대로 처신하였고, 제한이 없어져서 누구나 등급을 건너뛰어 승진할 생각이나 하였다. 명예를 바라는 마음이 사라지니 오로지 이익만을 좇아 외직을 중시하고 내직을 가벼이 여겨서 모두 감사나 수령이 되고자 했다. 염치와 절조를 내팽개치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조정에서 탕평책을 시행한 지가 오래되어 사색당파가 함께 벼슬하였다. 벼슬자리는 적고 사람은 빽빽할 정도로 많으니 자연히 경쟁이 심해진 데다 전랑의 권한마저 폐지되어 경쟁이 더더욱 심해졌다. 그리하여 조급함과 탐욕이 크게 일어나 관료들의 기풍이 완전히 무너져 다시는 수습할 길이 없어졌고, 조정의 큰 권한은 완전히 정승에게 돌아갔다.   


7) 산수(백두대간)


백두산의 대간은 골짜기가 끊기지 않고 남쪽으로 수천 리를 내리 뻗어서 경상도 태백산까지 이르니 전체가 한 줄기 고개이다. 함경도와 강원도가 만나는 곳이 철령인데 이 고개는 북쪽으로 통하는 큰길이다. 이 줄기가 남쪽으로 향하여 추지령이 되고 금강산이 되고 연수령이 되고 오색령이 되고 설악산이 되고 한계산이 되고 오대산이 되고, 대관령이 되고 백복령이 되고 이어서 태백산이 된다.


태백산에서 산맥 등성이가 좌우로 갈라져 뻗어간다. 왼쪽 줄기는 동해를 따라 내려가고, 오른쪽 줄기는 소백산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태백산 위쪽의 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설령 첩첩산중이라도 산등성이와 산맥이 잇따라 자주 끊겨서 큰 고개가 네 개, 작은 고개가 일곱 개다.

소백산 아래 죽령은 큰 고개이고, 죽령 아래의 천주령과 대원령(하늘재)은 작은 고개다. 주흘산 아래 조령은 큰 고개이고, 조령 아래 양산(희양산)과 율치는 작은 고개다. 속리산 아래 화령과 추풍령, 황악산 남쪽 무풍령은 작은 고개이고, 덕유산 남쪽 육십치와 팔랑치는 큰 고개이며, 여기를 지나면 지리산이다.  


8) 정약용의 좋은 주거지 선택 기준

나는 주거지 선택의 이치를 이렇게 논한다. 무엇보다 마실 물과 땔감을 먼저 살펴야 하고, 이어 오곡을, 다음은 풍속을, 그다음은 산천의 경치를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