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북진 1구간(대원사-천왕봉-세석) >
1. 일시 : 2015. 5. 15(금) 09:27 - 17:40 (8시간 24분)
2. 산행구간 : 백두대간 1구간(대원사-새재-천왕봉-세석대피소) - 대원사-윗새재-새재-진주독바위-청이당-국골사거리-하봉-중봉-천왕봉-장터목- 촛대봉-세석대피소
3. 산행거리 : 19.7km(트랭글 gps)
4. 누구랑 : 홀로(카프리 나종대, 아내가 윗새재까지 동반)
5. 주요일정 - 06:00 광주광역시 자택 출발 (승용차로 아내 운전, 광주-88고속-대전통영고속-단성IC-대원사 약 155km) - 08:25 산청휴게소 아침식사 - 09:04-09:28 대원사 관람 - 10:30 윗새재 - 12:30 진주독바위 - 15:58 천왕봉 - 17:40 세석대피소(숙박)
---------------------------------------------------------------------------------------------------
<산행후기>
1) 인생의 모래시계 속도는 평생 동안 우리는 몇 번이나 식사를 할 수 있는가? 1개월에 90번쯤 줄어드는 것이니 인생의 모래시계 속도는 생각보다 빠름을 알 수 있다. 어제 저녁 회사 회식이 있었다. 같은 직급끼리 모인 자리라 내일 새벽 지리산을 출발하지만 빠질 수가 없었다. 백두대간 1구간을 하려고 휴가를 냈다. 토요일날 하면 되지만, 지리산대피소를 토요일날 예약하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회식 후, 영광에서 광주로 버스로 이동하여 집에 도착하니 저녁 11시이다. 허겁지겁 지리산 갈 배낭을 꾸리고 나서, 목욕하고 잠이 드니 저녁 12시 30분이다.
2)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추었는데..새벽 5시에 깼다. 피곤해 못 일어나고 있는데..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방에서 잔 아내가 일어나 따그락 따그락 주방에서 출발 채비를 하고 있다. 술을 먹으면 내가 코을 골기 때문에 술을 먹고 들어온 날은 나를 피해 아들방에서 잠을 잔다. 세수하고 아침 6시전에 승용차로 출발했다. 아내가 운전한다...고속도로로 나가는데 일출이 끝났다. 네비게이션을 대원사로 맞추고 나는 피곤해 잠이 든다.
3) 백두대간의 들머리를 윗새재로 정하고 태극능선을 타다 백두대간 북진 들머리는 통상 중산리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중산리는 물을 건너 천왕봉을 오르게 된다. 또 중산리는 백두대간 최고봉 천왕봉을 호위 봉우리 없이 바로 오르게 된다. 천왕봉에 대한 에의가 아니다. 대원사를 택해도 치밭목능선과 황금능선 사이의 계곡을 건너게 된다. 즉, 장당골을 건너게 된다. 대간길은 산자분수령이다. 물을 안 건널려면 ①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웅석봉, 왕등재, 새재를 거쳐 천왕봉에 오르거나, ②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서 구곡봉과 황금능선을 타고 천왕봉에 오르는 법 ③ 함양군 휴천면 추성리에서 두류능선을 타고 천왕봉에 오르는 법이 있다. 이왕 대간을 탔으니 산자분수령을 지키고 싶다. 하봉, 중봉, 천왕봉(상봉)을 경유하고 싶다. 따라서 들머리를 윗새재로 정했다. 덕산에서 출발하면 좋지만 직장인이라 시간 제약이 있다. 법을 지켜 비지정로를 안타는 것이 맞지만 우리나라 대간의 경우 국립공원 비지정로가 너무 많다. 법을 다 지키면 대간을 완성할 수 없다, 산림청의 경우 대간을 적극 장려하는데 국립공원원은 환경보호라는 명분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간길은 국민이 누구나 인정하는 우리나라 하늘길이다. 국립공원을 파괴하는 것은 대간길을 타는 사람이 아니다. 약초산행이라고 하여 희귀 약초를 채취하는 약초군이 문제다. 대간을 타는 사람중에 중간에 자연을 헤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대간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4) 백두대간 2차 종주는 속도에 구매받지 않으리라 88고속도로를 거쳐 대전-통영고속도로상의 산청휴게소에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번 백두대간 2차 북진 종주는 속도에 구애받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건만 항상 산악회에서 시간에 쫒겨 산을 탄 습성이라 약간만 꾸물대도 조바심이 난다. 천천히 걸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중요하다고 다짐을 해 본다.
5) 대원사를 아내와 구경하고 대원사에 9시경에 도착했다. 그 동안 지리산 화대종주를 6번이나 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대원사를 한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대원사는 비구니의 절이라 한다. 이웃하는 내원사 남자 승과 데이트를 해야겠다고 아내와 농담을 주고 받았다. 들어가 본 대원사...절처럼 인적이 끊겼다. 항상 절에 들어가 본 소감은 왜 절엔 사람이 들어와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일까? 나처럼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의 마인드로는 비록 중이 수도를 한다지만 자기 집을 찾아오는 사람과 대화도 하고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치 않을까 하는 생각을 불현듯 해 본다. 나만의 특이한 생각일까?
6) 이종원(승현)님이 화대종주 신기록(7시간 46분)을 세우고 아내와 대원사 경내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아내는 차로 집에 돌아가기로 했는데.. 아내가 운동을 할 겸 나를 바래다 주겠다고 한다. 대원사 계곡을 따라 함께 걷는다. 매년 5월초 기록경주로 종주하는 유평리 골인지점을 지난다. 아내에게 여기가 골인지점이라고 애기하고, 올해 나사모산우회 화대종주에서 1등을 한 회원 애기도 한다. 지리산 화대종주는 46.2km인데..우리 산악회 화대종주는 지리산 산길이 끝나는 지점을 골인지점으로 한다. 42.7km 지점이다. 도로에서는 차를 탈 수도 있어 기록의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대회는 2015.5.3(일)에 열렸다. 비가 종일 내렸다. 그러나 대회 신기록을 수립했다. 7시간 46분이다. 이종원(승현)님이다. 나는 29명 완주자 중 26위를 했다. 13시간 26분이다. 작년에는 43명 완주자 중 10위를 했는데 계속하다 보니 기록 경신의 열정이 떨어져 올해는 처음부터 편하게 완주했다. 작년에 비해 무려 2시간 30분이나 기록이 떨어졌다.
7) 조개골 산장 주인 외곡마을 삼거리를 지나 윗새재 마을로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트럭이 선다. 문을 열고 타라고 한다. 백두대간 1구간을 하려는데 타라고 하니 난감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타고, 아내는 대원사로 되돌아 간다. 차량 주인 왈, "왜, 여성분은 안 타냐고 한다". 아내는 승용차가 있어 돌아갔다고 애기해 준다. 약 2km를 타고 간 것 같다. 조개골산장 주인 트럭이다. 어디로 가냐고 묻자, 천왕봉을 가는데 치밭목을 거쳐야 할지, 지리 태극로를 타야 할지 고민된다고 애기했다. 산장 주인 왈, 본인이 수시로 산나물을 띁으러 태극종주로를 가는데, 흙길이라 보드랍고, 길이 번들번들하니 태극종주로를 가라고 한다. 또 유평리주차장에 있는 국립공원직원(이하 국공)은 총 9명인데, 소장을 뺀 8명이 2교대로 교대하고 있고, 그 인력으로는 등산로 정비도 벅차 가을 일부를 제외하고는 단속하지 않는다고 애기해 준다.
8) 국공 차가 보이자 새재로 먼저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고 조개골산장에서 커피까지 한 잔 준다. 지리산 조개골이란 이름이 이상하지만, 아침조(朝) 열 개(開) 자를 써서 지리산 동쪽 중 제일 아침을 빨리보는 곳이라 하여 조개골이라 한다고 한다. 이런 저런 애기를 하며, 커피를 다 마셔가는데, 갑자기 빨리 출발하라고 한다. 국공(=국립공원직원) 차가 방금 주차장에 섰다고 한다. 파란색 차이다. 빨리 국공 몰래 새재로 뛰라고 하면서, 들머리 길을 가르쳐 준다. 잽싸게 30분 거리인 새재 능선길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한숨도 쉬지 않고 올랐다. 다행히 국립공원 직원에게 잡히지는 않았다. 새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더니 조금 지나 조망바위가 나온다. 이제야 땀을 훔친다. 얼음 한 한 모금한다. 여름 산행에서 얼음 물이 제일 맛나다.
9) 90.5km 태극종주로 지리 태극종주로를 걷는다. 이 길은 2011년 10월 8일 2일 동안 무박으로 걸은 적이 있다. 거리가 무려 90.5km이다. 산을 타는 사람들의 로망(꿈)이다. 지금 현재 나사모산우회 회장을 하고 있는 컨디션 아우님과 같이 걸은 기억이 있다. 무려 37시간을 걸었다. 잠은 새석대피소에서 아침 일출을 보러 빨리 떠난 사람이 있어 1시간 도둑잠을 잤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힘든 줄도 모른다. 좋은 파트너와 보드라운 흙길을 하염없이 걸은 지리산 동부능선이 항상 그리웠다. 특히, 오늘 새재부터 천왕봉까지는 밤에 걸어 언젠가 낮에 길을 확인하고 싶었었다. 지금까지 내 생애 두번째로 뿌듯한 기억이 있다. 첫번째는 지리태극종주이고, 두번째는 백두대간 무결석 완주이다.
10) 지리태극로를 걷다 지리태극로를 걷는데 사람을 한사람 볼 수도 없다. 청이당에서 젊은 청년을 만난다. 반갑기도 하지만 깜짝 놀랩기도 하다. 옷 차림이 등산객이 아니고 일반인 복장이다. 물어보니 산 아래 주민이라고 한다. 주방 옷차림을 입었다. 괜히 겁이 난다. 청이당에서 물을 뜨고 태극로로 올라왔더니 이미 가버렸다. 국골사거리로 오른다. 힘이 든다. 예전에는 안 쉬고 국골사거리로 올랐는데 이번에는 두 번 이나 쉬게 된다.
11) 정든 스틱과 이별하고 국골사거리에서 하봉쪽으로 오르는데 예전에 두류봉이라는 잘 못된 표지석이 철거되었다. 분명 두류능선은 국골사거리에서 우측인 추성리 방향쪽인데 어느 단체에서 잘 못 세운 것 같다. 하기야 내가 소장하는 월간산 지도에도 두류봉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봉, 중봉으로 오르는 길이 많이 힘들다. 조망도 없다. 구름에 가려 시야가 거의 없다. 하봉까지 올랐는데...시간이 많이 흘렀다. 요새 지리산에 입산 통제시간이 있는데 불안하다. 오후 5시까지는 도착해야 할 것 같은데..그 동안 너무 많이 휴식을 하고 사진을 찍어 시간이 촉박하다. 서두르는 통에 스틱이 바위에 끼었는데 제껴서 3단 스틱 제일 아래 토막이 부러진다. 아, 애석하다! 아깝다. 백두대간을 같이 하고 주말마다 나의 다정한 벗이었는데..
12) 천왕봉을 30번째 오르고 힘들게 천왕봉에 올랐다. 오후 4시이다. 천왕봉에 30번째 올랐다. 오르고 보니 인증샷을 찍어 줄 사람이 없다. 요새 지리산 입산통제 시간때문에 그런 것 같다. 배낭에 내 이름표(나종대)를 천왕봉 표지석 앞에 놓고 30번째 인증샷을 찍었다. 이번에 지리산 주종주로를 11번째 걷는다. 인증샷을 포기하고 100미터 정도 내려가는데 한 가족이 힘들게 올라 온다. 아빠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아들이 올라온다. 큰 아들이 제일 선두다. 조금 있으니 힘들게 올라오는 엄마가 보인다.
13) 안개 낀 연하선경을 걷다 다행히 장터목대피소에서 국공 직원의 제지 없이 세석으로 향한다. 중간에 세석대피소 직원에게 늦는다고 전화를 했더니, 6시까지 들어오면 된다고 한다. 세석대피소 가는 길에 많은 산객들을 만난다. 평일이어도 지리산에 많은 등산인이 찾는다. 아름다운 연하선경을 걷는다. 안개가 끼어 더 운치가 난다. 쉬엄 쉬엄 걸어 후반이어도 체력이 남아 돈다. 그러나 배가 많이 고프다. 같은 산악회 이한희 님이 전화가 왔다. 술하고 돼지고기 좀 가져오지 그랬냐고 묻는다. 쌀, 김치에 참치만 가져왔는데 돼지고기에 소주 생각이 절로 난다. 미리 챙기지 못한 것은 허겁지겁 배낭을 꾸린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등산인은 무게 때문에 맛난 음식을 챙기기가 힘들다. 마트에 가 보면 300미리 소주도 있고 돼지고기 반 근만 가져왔으면 저녁이 풍성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침에 배낭을 저울에 올려봤더니 11키로가 나가서 술은 엄두도 못냈는데 입에서 군침만 돈다.
14) 세석대피소에서 저녁밥을 태우고 촛대봉을 넘어 아름다운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늦어 대피소 접수부터 했다. 접수하고 취사장에 가는데 야외 식탁에서 삽겹살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아 배고프다. 2004년도에 처음 지리산종주를 아내와 함께 할 때 사용했던 등산장비라 사용이 서툴다. 배가 고파 얼른 3인분 쌀을 전부 씯어 넣고 버너를 최대한 틀어 밥을 지었다. 밥을 지으면서 참치로는 허기가 질 것 같아...매점에 햄을 사러 갔다. 그러는 사이 밥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다. 아뿔사 가스 화력을 적당히 틀고 밥의 뜸을 들여야 하는데 나의 실수다. 학교 다닐 때 자취를 했지만...요새는 쿠쿠 압력밥솥에 버튼만 누르면 되기 때문에 방심했다. 먼저 온 사람은 야외 탁자에서 삽겹살에 지글 지글 맛있게 먹고 있다. 늦게 도착한 가족 여성 산객이 걱정이 됐는지 가르쳐준다. 밥이 이렇게 많이 타고 꼬드밥이 됐으니 일단 꼬드밥을 걷어 내고 밑의 탄 부분은 버리라고 한다. 버너에 김치찌게, 참치, 햄을 넣고 끊으니 군침이 돈다. 아까 코칭해줬던 가족 산객이 같이 식사하자고 한다. 가 보니 상추에 쭈꾸미에 푸짐하다. 복분자도 있고 포도주도 있다. 꼬드밥을 다 먹어치웠다. 매점에 햇반을 팔고 있어 안심하고 다 먹었다.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재미가 최고다.
15) 세석대피소의 밤 즐거운 식사 후에 세석 식수장에서 세수를 하고 간이 양치질을 하고 대피소로 돌아오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2층 내 자리로 가서 모포를 깔았다. 저녁 8시도 안 되었는데 내 옆자리 등산객은 모포를 깔고 누웠다. 얼른 아내에게 전화하고 나사모산우회 카페에 들어가 본다. 일요일 정기산행에 신청자가 적다. 41인승 버스에 24명이 신청했다. 오전 산행할때도 박문식 총무팀장님이 왜 신청 안했냐고 문자와서 지리산 왔다고 애기는 했지만 그저 미안할 뿐이다. 힘이 들었는지, 옆에서 코를 골았지만 나도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 12시 넘어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다녀 와서 잠시 뒤척이다 또 다시 잠이 들었다. 지리산의 산신령이 된 인간 카프리 나종대의 하루가 이렇게 갔다.
|
1. 지리산(김형수님 한국555산행기에서 발췌)
-한반도의 남단에 웅장하게 솟은 지리산은 3개도 5개군 16개 면의 방대한 지역에 걸쳐 동서로 약 45km의 장대한 능선을 이루고 있으며, 1,400m가 넘는 고봉만도 20여개가 된다. 산능에는 천왕일출, 반야낙조, 연하선경 등 손꼽는 지리 7경 이외에도 수림지대와 고원지대가 어우러져 있다.
-게곡에는 불일(佛日), 구룡, 무재치기, 칠선, 가내소, 법천, 용추 등 지리산 7개 폭포와 많은 담(潭)과 소(沼)를 이루는 명소가 수없이 있다. 화엄사, 쌍계사, 대원사 등 거찰을 비롯하여 많은 사찰과 명승지가 있는 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에 우리 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명은 두류산(頭流山),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불러졌는데, 이성계가 왕위를 찬탈할 야심으로 기도를 올렸더니, 백두산, 금강산과는 달리 지리산의 산신만은 이를 승낙하지 않았다고 하여 지혜가 다르다는 뜻으로 지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찍이 중국 사람들은 영주산, 봉래산과 더불어 이 산을 동양의 삼신산이라고 불러 불로장생케 하는 불로초가 있는 것으로 믿었다.
- 지리산 10경 ; 천왕일출, 반야낙조, 노고운해, 직전단풍, 세석철쭉, 벽소명월, 불일폭포, 연하선경, 칠선계곡, 섬진청류
지리산/智異山
지이산(智異山)이라 쓰고 지리산으로 부르는 이산은 옛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는 三神山의 하나로 方丈山이라 일컬어왔다. 방장이란 중국에서 먼 옛날부터 동해 가운데 신선이 살고 불로초가 많다고 전해지는 미지의 신비경인 봉래,방장,영주 삼신산의 이름을 하나 따온 것이다. 불교에서는 지리산을 문수도장으로 불렀다. 지혜의 문수대성이 이 산에 머물며 불법을 지키고 중생을 깨우치는 도량으로 삼았다는 것이다.지리산이라 함은 신의 땅에 오묘한 이치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 즉 특이한 지혜를 간직한 산이란 뜻이다.
노고단/老姑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으로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렸던 성단의 의미로 노고단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성삼재/姓三峙
삼한시대에 마한군에 밀리던 진한왕이 전란을 피하여 지리산 심산유곡으로 찾아들어 달궁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피난할때 북쪽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으므로 팔랑재(八郞峙), 서쪽 능선은 정 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으므로 정령재(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으로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령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姓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하게 하여 성삼재라 부르게 되었다.
임걸령/林傑嶺
高嶺인데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능선이 동남풍을 막아주니 녹림속에서 천혜의 요지이며, 샘터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조선 명종 때의 초적두목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임걸령이 되었다. 이곳에 진을 치고 말을 길렀다고 하고 실제로 마구와 철촉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삼도봉/三道峰
경남,전남,전북의 3도가 경계를 이루는 데서 유래가 된 암봉으로 날라리봉이라고도 하는데 삼도봉의 바위모양이 낫날같다고 하여 낫날봉이라 하였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이 되었다. 인간 못된 날라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장터목/場基項
천왕봉 남쪽의 시천 주민과 북쪽의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이곳에 장을 세우고 생산품을 물물교환 한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제석봉/帝釋峰
6,25 이후 까지만 하더라도 전나무 구상나무들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말기 농림부장관의 삼촌 되는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석단에 재제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내면서 말썽이 생기자 증거를 인멸한 양으로 제석봉에 불을 질러 나머지 나무마저 지금과 같이 횡사시켜 버렸다고 한다.
반야봉/般若峰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로 반야(般若)란 불교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지혜를 뜻하는 말이니 지리와 二言同意로 상통하는 말이다.정상에서 600미터 거리에 있는 북봉은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의 상록 원시림지대를 이루고 있어 창연한 경관속에 태고의 정적이 깃들어 있고 반야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가면 절벽아래 묘향대가 있다.
연하천/烟霞泉
명선봉의 북쪽 가슴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고산지대 임에도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속에서 흐르고 있다고 하여 연하천(烟霞泉) 이라 부르게 되었다.
피아골
옛날 속세를 버리고 한적한 선경을 찾던 선객들이 이곳에 오곡 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연고로 자연히 피밭골 이라 부르게 된 것이 그후에 그 발음이 피아골로 전화된 것이라고 한다.
뱀사골
뱀사골 초입에 있는 석실 건너편에 배암사라는 사찰이 있었던데 따른 것으로 배암사골이란 이름이 변하여 생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고, 뱀이 많고 적음과는 무관 한다.하지만 뱀이나 용에 관한 명소가 많다. 요룡대,탁용소,뱀소 등
달궁/達宮
마한의 한 부족이 심원계곡에 들어와 궁전을 짓고 살았는데, 달궁은 그 궁궐터고, 정령치는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위해 정장군을 지키게 했고, 성삼재는 각성받이 장군 세명이, 팔랑치는 병사 여덟이 지키던 수비성터라는 얘기가 전한다.
토끼봉/兎峰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정상이 밋밋한 초원지대와 구상나무, 상록수림 지대로 정연하게 구분되어 있어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훌륭한 정원처럼 그 경관이 우아할 뿐 아니라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이 서쪽에 솟아있고 북쪽은 뱀사골 동남쪽은 화개골의 광활한 지역을 덮고 있는 울창한 수해의 전망이 누구나 잠시 쉬어가기 알맞은 고봉이다. 정상에 지보초가 군생하고 있어 지보등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벽소령/碧宵嶺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룩한 고개로서 그 주위가 높고 푸른 산릉이 겹겹이 쌓여 유적한 산령을 이루고 있다. 달밤이면 푸른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종석대/鍾石臺
노고단과 성삼재 사이에 위치한 봉우리로 거센바람이 바위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돌종소리 같다고 하여 종석대라 붙여 졌다 하며 종석대와 이어지는 끝봉우리를 합쳐 차일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석평전/細石平田
잔돌평전이라고도 부른다.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하여 옛부터 세석평전이라 불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고원으로 그 주위가 12킬로나 된다고 하며 상중하로 식물분포가 구분된다. 상층은 초생종류인 지보초,좁쌀풀,산새풀등이 군락을 이루고 중층은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관목지대, 하층은 구상나무를 비롯한 상록수와 활엽수가 혼유림을 이룬다.
천왕봉/天王峰
지리산의 최고봉 천주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지리산의 웅대한 기상을 상징하고 있다.동서남북 사방을 둘러 보아도 아무 거칠 것 없는 천왕봉정상에서의 전망은 장엄하기 이를데 없으며 특히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석양낙조의 풍광도 좋거니와 새벽동녘하늘가에 끝없이 펼쳐지는 구름바다의 운평선에서 떠오르는 천왕봉 해돋이의 장관은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은 천하의 장관으로서 지리산 최고 명소로 꼽힌다.
請看千石鍾 천석의 거대한 종은
非大구無聲 큰것으로 치지 않으면 울리지 않듯 (手+口:두드릴 구)
爭似頭流山 지리산의 기상인 천왕봉은
天鳴猶不鳴 하늘이 울지라도 울리지 않는다
- 南冥 曺植 - 姜
▼ 백두대간 1구간 지리산 산행지도(대원사-새재-천왕봉-세석대피소)
▼ 지리 동부능선 지도
▼ 산청휴게소 아침식사(산채비빔밥, 순두부)..빵과 소세지도 사고
▼ 대원사
<대원사> 대원사는 1993년 입적한 현대 한국불교계의 큰스님 성철이 처음 불가에 발을 들여놓은 사찰이기도 하다. 1912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난 성철은 사상적으로 방황하던 20대의 젊은 시절 불경에 이끌려 이곳 대원사에 참배하러 들어왔다. 그는 당시 처자를 거느린 속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탑전에 자리를 깔고 참선 수행에 들어갔다. 그런 행동은 절집의 규칙을 깨뜨리는 일이었으나 해인사 백련암의 동산 스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 성철이란 법명을 주며 중이 될 것을 권했다고 한다. 현재 대원사는 비구니들의 칠선 도량이다. |
▼ 대원사에서 아내와 함께 출발(09:27)
원래는 혼자 출발할 계획이었으나..아내가 운동 겸, 응원 겸 동행..
사실, 윗새재까지는 승용차로 도착 가능하나, 대원사 계곡 길도 알고, 한번 걸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도보 출발
▼ 물이 맑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의 신록도 보기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봄과 가을은 짧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 금낭화 : 아름다운 주머니를 닮은 꽃이란 뜻임
▼ 중간에 민박집도 보이고
▼ 뭔가 이름이 있을 듯한 바위
▼ 유평리에서 천왕봉까지 10.2km 이정표...
유평리에서 대원사까지는 1.5km, 대원사에서 대원사(유평리)주차장까지는 2km..3.5km는 도로구간
▼ 무릉도원이 나사모산우회 화대종주 골인점
▼ 새재마을과 외곡마을 분기점
외곡마을은 외고개라고도 합니다.
▼ 외곡 = 외고개 동일 이름
▼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외곡마을 도로
▼ 새재마을 조개골 산장
사립문에서 우측으로 가면 새재 들머리가 나옵니다.
조개골 이란, 계곡 입구에 있었던 조계사에서 유래 설, 조개화석(化石) 발견 관련 설, 지리산에서 아침이 가장 먼저 열리는 골자기에서 유래된 조개(朝開) 설이 있다 .. |
▶ 새재삼거리-무제치기폭포를 거쳐 치밭목으로 가는 등산 이정표
▼ 조개골 산장 주인
검정 개가 순하게 생겼습니다..주인님을 닮은 듯...
여기 사시는 분은 다 사연이 있겠지요
▼ 여름에 평상에 누우면 신선이 될 듯..수박 썰어 먹으면서...
▼ 사립문에서 우측으로 틀면...
▼ 들머리
▼ 새재
왼쪽은새봉, ...오른쪽은 외고개 왕등재
▼ 조망바위에서 바라 본 왕등재(왼쪽)...오른쪽은 치밭목능선
▼ 산 철쭉이 아름다운 힐링의 길
산철쭉은 흰색과 연분홍색이 있는데...바래봉 철쭉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워요..
한마디로 고상합니다.
▼ 이런 흙길로 보존될 수 있었던 점에 감사 드립니다.
▼ 하늘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땅과 앞만 바라보다..정작 멀리 못 보게 됩니다.
▼ J3클럽 세파부부..2년전 화대종주때 주능선에서 뵈었습니다.
▼ 새봉 너럭바위
▼ 새봉 너럭바위에서 바라 본 진주독바위 방향
함양독바위는 와불봉(상내봉)에서 조금 더 가면 있습니다.
몇년전 컨디션님, 여백님이랑 함양 독바위 올라갔다..내려오다 위험해 혼났습니다.
▼ 진주독바위
▼ 밧줄이 삭지 않았는지...당겨보고서 올랐습니다..
새재쪽에서 오는 사람은 왼쪽 가장자리에 밧줄이 있습니다..
우회로도 있습니다.
▼ 새봉 방향
▼ 국골사거리쪽을 능선으로 가름해 봅니다..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바위를 넘어야 할 길도 있습니다..
▼ 맨 아래 도시락이 있어..온 짐을 풀어 놓습니다..
1박 2일 산행이라 짐이 많습니다..코펠, 바나, 가스 등..무게로 11키로그램
▼ 삼거리가 나오는데 바위를 넘어야 합니다..
▼ 청이당에서 물을 보충하고..
예전에는 나무에 청이당이라고 써 있었는데.. 지금은 없더군요..
계곡물소리가 납니다..가보면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태극로에서 약 1백미터 거리
▼ 청이당서 철모삼거리를 거쳐 윗새재로 원점 회귀 할 수 있습니다.
▼ 국골삼거리 오르다 야생화 숲을 몇 장 찍어 보았습니다.
▼ 국골사거리
(펌)지리산(智異山) 국골과 초암능선 지리산 동북부에 위치한 경남 함양 땅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으로, 지리산 최고로 이름난 칠선계곡(七仙溪谷) 과는 초암능선을 가운데에 둔 아주 운 이웃입니다. 지리산의 수많은 지명 중에서 나라 國자를 쓰는 유일한 곳인 국골은,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이 추성산성을 쌓고 신라의 침공에 대비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두류능선과 초암능선 사이에 있는 국골은 두어 시간 오르면 좌골과 우골로 갈리는데, 좌골은 초암능선 정상인 소년대(1746m)와 국골 사거리 사이로, 우골은 초암능선의 촛대봉 부근으로 이어지며, 처음 들머리는 비슷해 보이나 좌골이 수량이 많고 절경인 폭포가 7개 정도 되어, 대부분의 산행객이 좌골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
▼ 나무 뒤로 넘어가면 국골..많이 위험합니다..
예전에 등산사고도 있었던 곳
▼ 괭이눈?
▼ 현호색이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 나무도 수명이 있겠죠? 몇 년이나 살까요?
▼ 나무도 바람 사고도 당하고
▼ 옛날에 두류봉이라는 이정표가 있던 곳
▼ 봄이 가는지 얼레지가 시들고 있었습니다..인간이나 식물도 다 유한합니다..
일년에 365개 바둑돌이 있다면...1만개를 사 놓으면 ...사는 게 아까 울 것 같습니다.
▼ 통상 영랑대라 부르는 곳
▼ 얼마전 태극종주를 단체로 했던 태달사의 표식기 같습니다.
▼ 하봉에서 바라 본 풍경
▼ 하봉 헬기장
▼ 중봉 금줄을 넘었습니다..
새재부터 중봉까지 딱 한사람 만났습니다..
새 소리에 놀라고..헛기침도 하고..스틱 소리를 내며 걸었습니다.
대피소 입산시간 때문에 국골사거리부터 속도를 내다 스틱만 바위틈에 낑겨 부러뜨렸습니다.
▼ 하단부가 없어진 스틱
▼ 천왕봉에 아무도 없습니다..배낭으로 인증 샷..30번째 천왕봉 등정입니다
<제석봉 유래> 제석봉은 정상이 평평하여 옛날에 제석단(帝釋壇)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그 후 제사를 폐지하고 봉우리 이름을 그에 따라 제석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금에도 정상에 개와 파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 제당이 있던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
▼ 장터목대피소
<장터목> 옛날에 남쪽의 산청군 시천면 사람과 북쪽의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 교역하던 장터였으므로 장터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
▼ 일출봉은 500미터 떨어져 있고 비지정로인디...
▼ 일출봉
▼ 연하선경
<촛대봉>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군립체인 촛대봉은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전한다. |
▼ 동의 나물 : 둥근 잎사귀를 깔대기처럼 접으면 마른 입술을 축일 수 있게 한 모금 정도 물을 담을 수 있는 작은
동이가 되기 때문에 동의나물이라 함. 물가에 사는 식물
그런데..이 동의나물은 절대 먹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독초..취나물처럼 생겼으니 유의해야 함
<세석고원> 촛대봉에서 석양에 내려다보는 세석고원 건너 영신봉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전경이 눈앞에 닿는다. 해발 1,500m 넘는 이 고원은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고원으로 그 둘레가 12km이고 약 30만평의 면적으로 작은 돌밖에 없는 토양지대라 해서 잔돌평전, 세석평전이라고 한다. 매년 5월말에서 6월초에는 만개하는 수십만 그루의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지난 1972년부터 이 시기에 철쭉제를 지내고 있다. |
▼ 세석대피소
구상나무가 곳곳에 보이네요..
▼ 힐링 산행이라 생각하고 출발했지만 천왕봉 오름길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혼자 거닐며..여러 생각을 하다가..어느 순간 백지처럼 여러 생각이 지워졌습니다.
조망이 좋았으면 좀더 많은 산을 봤겠지만..
흐려서 나름 시원했고..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철학의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게 옳고 그르다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보다
유한한 생을 살면서 순응하고..육체가 힘들더라도 대간길을 보물을 빼 먹는 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매진하길 다짐해 보았습니다.
산신님이여..저에게 밝고 긍정적인 면만을 가득 실어 주십시요!
<백무동> 백무동이란 첫째 무당이 많이 살아서 백무동(白巫洞)이라고도 하고, 둘째 무사가 많이 살아서 백무동(白武洞)이라고도 하고, 셋째 흰 안개가 많이 끼어 있어서 백무동(白霧洞)이라고 전한다고 한다. |
[대간조망편집사진]
※ 아래 사진은 마스터님 산행후기에서 복사해왔습니다...
▼ 새봉
▼ 진주독바위에서 바라 본 하봉방향 산너울
▼ 천왕봉은 중봉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천왕봉정상석 변천사] |
카프리가 두분으로 확인했답니다..
'안전우려' 지리산 천왕봉 표지석 옮길까요
(산청=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지리산 정상 천왕봉 표지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경남 산청의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실족 등 사고 우려가 있는 천왕봉(해발 1천915m) 표지석의 안전관리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받는다고 11일 밝혔다.
등산객들이 올라설 수 있는 천왕봉 표지석 주변 면적은 30㎡에 불과하다.
그런데 단풍철을 비롯해 등산객이 몰릴 때면 표지석 주변엔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좋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특히 천왕봉 표지석 2m 앞은 절벽이어서 사진촬영 때 실족 등 안전사고 위험이 커 안전조치 건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공원사무소는 표지석 위치 이전, 방향 전환, 현상유지와 안전시설 설치 3가지 안을 놓고 의견을 묻고 있다.
지난해 공원사무소는 천왕봉을 낀 산청·함양군과 협의를 벌였다.
그러나 두 지방단체가 서로 자기 지역으로 표지석을 옮기려고 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최적의 해결방안을 도출하려고 여론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행정구역상 현재는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 경계선에 서 있다.
1.5m 높이의 천왕봉 표지석은 1982년 당시 이규효 경남도지사와 권익현(산청·함양) 전 국회의원이 앞장서 세웠다.
조사 참여제한은 없으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천왕봉 표지석 이전방안에 대한 투표에 참여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제안하면 된다.
shch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03/11 13:55 송고
15.6.28 나사모산우회에서 칠선-하봉-천왕-백무 산행때 가보니
정상 위험한 돌들은 다 치워졌고~ 안전하게 촬영할수있도록 이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손가락 표시는 천왕봉을 31번째 올랐다는 표시네요..이제 이 퍼포먼스도 유치해서 그만 할랍니다)
(이제 숫자는 잊어야할 때 인 것 같습니다)
천왕봉에 1등 삼각점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찾아보고 싶네요..카프리 (노고단 정상 1등 삼각점은 대간때 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