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백두대간2차(홀로.북진)

지리산의 유래(주종주로편)

카프리2 2016. 4. 30. 06:13



 천봉만학(千峯萬壑)의 지리산

 수많은 산봉우리와 산골짜기 / 골학


지리산 주능선은 한 마리 소의 형상을 닮은 지리산에서 등뼈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즉, 화대종주에서 뒷다리는 화엄사계곡이고, 앞다리리는 대원사계곡이다.  


지리산 종주로는 언제 개통이 되었을까?

조선시대 김종직, 김일손, 조식 등 여러 선비들이 지리산 산행기를 썼지만, 그때 당시 등산로는 주로 천왕봉에서 세석까지의 구간에 그쳤다.

화개재, 벽소령, 세석, 장터목 등 남북간의 교통로로 열려 있었지만,

최초로 주종주로 기록이 남은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 일본인 식물학자 나가이의 '지리산 식물조사 보고서'에서 주종주로가 선명히 나와

있다고 한다. -김명수 지리산에서 인용-

그 전에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종주로를 다녔어도 기록은 나와있지 않은가 보다. 

 


주능선 종주 산행 기점을 천왕봉과 노고단 그 어디를 잡아도 무방하겠지만,

먼저 천왕봉을 곧바로 치받아 올라 이후 내려서듯 하는 산행은

어찌보면 지리산에 대한 결례인 듯 싶고, 산행의 묘미도 떨어뜨리는 것 같다.

따라서 통상 화대종주는 화엄사에서 부터 시작한다.

 


1. 지리산의 유래(주종주로+대원사)

 지 명

거리

(km)

 높이

(m)

유 래

 성삼재

 

 

 성삼재는 삼한시대의 전적지로, 마한군에게 쫓기던 진한왕이 달궁계곡에 왕궁을 짓고 피난하여 성(姓)이 다른 세 사람의 장수를 보내 지켰다 해서 성삼재라고 한다. 성삼재는 가장 중요한 곳이라 남쪽에 있다.

북쪽 능선에 8명의 장수를 두어 지키게 한 곳이 팔랑재, 동쪽은 황장군에게 지키게 했다 해서 황영재, 서쪽 능선은 정 장군으로 지키게 했다고 해서 정령재(치)라고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종석대

 

1,361

 종석대의 유래는 우번대사가 수도 중에 여인의 모습에 끌려 지금의 우번암자에 이르니 석종소리가 들려 큰 깨달음에 이르렀다 하여 종석(鐘石)대라 한다.

무냉기

 

 

물을 넘겼다는 뜻(달궁으로 빠지는 노고단 물을 화엄사쪽으로 넘김)

노고단

 

1,502.2

노고단은 도교에서 온 말로, 우리 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을 일컫는다. 서술성모를 마고할미로 부르게 된 데서 노고단이란 지명이 유래했다.

돼지평전

 

 

돼지평전은 예로부터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둥굴레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피아골삼거리      피아골 마을의 한자는 ‘稷田(직전)’이다. 여기서 직이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로, 보통 ‘피’라고 불린다. 풀어서 보면 직전은 피밭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6?25동란으로 이곳에서 피를 많이 흘려 ‘피의 골짜기’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하나 이는 낭설이다. 왜냐하면 피아골은 전쟁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기록에도 피아골은 자주 등장한다. 

임걸령

 

 

임걸령(1,320m)으로 연결된다. 이곳은 옛날 녹림호걸(綠林豪傑)들의 은거지, 즉 주변에 키 큰 나무가 호걸처럼 많이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의적 두목인 임걸(林傑)의 본거지라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능선 10m쯤 아래 임걸령샘터가 있다.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리고 얼음이 꽁꽁 얼어도 이곳만큼은 물이 콸콸 나오는 신비의 샘이다.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주고, 여름에 얼음 같이 차가운 그런 물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수통에 물을 다시 채우는 곳이다.

노루목

 

 

노루목은 흔히 노루가 자주 다니는 길목이나 넓은 들에서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좁은 지역을 말한다. 지리산 주능선의 노루목도 예외 아니다. 이곳의 암두(巖頭) 모양새가 마치 반야봉에서 내려지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로 내려다보는 것 같아 부르게 된 이름이다. 또 노루가 지나다니는 길목이란 얘기가 전해온다.

반야봉삼거리

 

1,732

 좌측은 반야봉, 주종주로는 우측으로 직진

삼도봉

 

1,449

삼도봉은 이름 그대로 경남?전남?전북 삼도의 경계다. 정상부는 심하게 주름진 암릉이지만 전망이 좋아 잠시 쉬면서 지리산 주능선을 감상하는 곳이기도 하다.

화개재

 

 

화개재는 삼도봉과 토끼봉 사이의 허리목이자 뱀사골과 화개골을 연결하는 노루목이다. 북쪽 뱀사골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첫 능선이 화개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뱀사골산장이 바로 발아래 있었다. 화개재는 옛날 화개장터가 있던 자리라고 안내판에서 설명하고 있다. 화개장터는 지리산 능선에 있었던 장터 중 하나였다. 경남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는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 했다고 한다. 정말 이 높은 곳까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와서 물물교환을 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토끼봉

 

1,535

 토끼봉은 반야봉에서 방위가 묘향(卯向)이라 하여 묘봉으로 불리다가 토끼봉으로 불리게 됐다. 여순사건 이후 지리산으로 숨어든 빨치산들이 봉우리에 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고 꽃대봉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명선봉

 

1,582.6

연하천 발원지이자 남서쪽 봉우리인 명선봉(1,586m)이 20여분 가면 나온다. 명선봉에서 대성리 의신마을과 삼정마을이 계곡 안에 묻히듯 가라앉은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명선봉은 토끼봉(1,534m)으로 이어진다

연하천대피소

 

 

연하천은 높은 지대에도 불구하고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 하여 ‘烟霞泉’이라 했다고 한다.

연하천은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 하여 ‘烟霞泉’이라 했다. 연하천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우면서 물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따라서 사시사철 등산객이 끊이질 않는다. 지리산 종주객들이 짐을 재정비하고 물을 보충하는 주요 지점이기도 하다. 

※ 연하천(烟霞泉)이란 이름은오래전부터 전래된 이름이아니라 구례의연하반 산악회(현 지리산산악회)에서 명명한이름이다.

우리 나사모산우회 대간팀에 연하인님이 있었다. 대간때 연하천 산장 애기를 듣고 전화로 어제 물어봤더니,

그 분의 말에 의하면, 주 종주로를 개척한 분은 구례중학교 연하반 등산클럽의 우종수 선생님이다고 하신다.

1955년부터 연하반에서 지리산을 산행하며, 지리 8경을 지었다고 한다. 또 1967년 지리산국립공원 지정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연하반 산악회는 구례산악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삼각고지

 

1,484

 삼각고지라는 말은 이곳이 남원시 산내면, 함양군 마천면, 하동군 화개면의 경계지점이라서 그렇게 붙혀졌다

형제봉

 

1,453

 형제봉은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비슷한 모습이라 해서 명명됐다. 언뜻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石像)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두 개의 석상이다. 옛날 지리산에 두 형제가 수도하고 있을 때 산의 요정 지리산녀의 간곡한 유혹을 받았으나 형제가 다 같이 이를 물리치고 도통성불 하고,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산녀의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道身)을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두 개의 석불이 됐다고 전한다.

벽소령대피소

 

 

벽소령(1,350m)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의 허리에 해당하는 셈이다. 예로부터 화개골과 마천골, 즉 지리산의 남북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대표적인 곳이다. 벽소령에서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碧?嶺’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공터

 

 

 오공능선의 분기점

덕평봉

 

1,521

정상부가 각이 지지 않고 평평한 것이 덕스러워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덕평봉(1,521.9m)을 지난다.

칠선봉

 

1,564

칠선봉(1,558m)이 영신봉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봉우리 자체가 암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일곱 개의 바위가 오밀조밀 모여서 정상을 이룬 모습이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형상과 같다고 해서 칠선봉이라 불린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비경의 암봉들이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면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돋운다.

영신봉

 

1,652

낙남정맥의 분기점이 되는 영신봉(1,651.9m)이 나온다. 영신봉은 말 그대로 신령스런 봉우리라는 의미다.

세석대피소

 

 

세석평원은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데서 유래했다. 그 주위가 12㎢가 되고, 면적이 무려 30여만 평에 달해 남녘의 개마고원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에 한국 특산식물인 구상나무도 자생하고 있으며, 세석대피소도 있다

촛대봉

 

1,703

촛대봉(1,703.7m)은 한 여인이 산신령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촛대를 켜고 천왕봉을 향해 빌다가 돌로 굳어버린 모습이라고 전한다

삼신봉

 

1,697

삼신봉은 세 명의 신이 놀았던 봉우리

연하선경    

 연기연, 놀하, 지리10경

연하봉

 

1,722

연하봉(1,730m)은 구름이 노는 아름다운 봉우리라는 뜻으로 ‘지리 8경’ 중의 하나다

장터목대피소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산청 시천 주민과 함양 북쪽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 장(場)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데서 이름 붙여진 장터목이다.

 제석봉    1,806  제왕이 자리했다는 제석봉이다. 제왕이 성모천왕을 지키는 듯한 느낌이다.
 통천문      천왕봉에서 내려오면 통천문(通天門)이 나온다.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문이다. 동굴 입구에 옛날 필적으로 ‘通天門’이란 대각자가 보인다. 예로부터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하다는 전설이 전한다.  
 천왕봉    1,915  지리산(智異山)의 명칭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달라진다" 라는뜻에서 유래된것으로 왕봉 정상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란 정상비석이 있다. 이 내용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닌 것이다. 옛날에는 ‘萬古 天王峰 天鳴猶不鳴(만고 천왕봉 천명유불명)’이라 새겨진 청석표주와 지리산 산신령을 봉안하는 성모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명의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는 뜻을 그대로 쓴 것이다. 서산대사는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이라 했다. 그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지리 8경’ 중의 으뜸인 ‘천왕일출’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광경이다.
 중봉    1,875  지리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천왕봉을 상봉이라고도 함)
 써리봉    1,599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다 바라보면,  써리봉 바위가 농기의 써래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
 치밭목대피소    

취나물이 많이 나서 치밭목

 무제치기폭포      무지개를 치는 폭포라는 뜻에서 이름붙은 폭포
 새재삼거리    

윗새재와 아랫새재로 갈리는 삼거리

 유평리    

나사모산우회의 지리산화대종주가 끝나는 종착지. 무릉도원 식당이 있음.

대원사-유평리통제소까지는 도로를 걸음

 소 계      
 대원사    

현재는 비구니의 칠선 도량. 성철스님이 처음 불가에 발을 들여 놓은 사찰. 해인사의 말사.

신라 연기조사가 창건

 유평통제소    

대형버스 주차장이 있는 곳. 유평통제소 - 대원사 - 유평리는 승용차가 다닐 수 있음

 총 계

 

   

 

 

2. 지리산의 3대 봉우리 유래(노고단, 반야봉, 천왕봉)


노고단(老姑壇/1507m)

1. 유래

노고단은 도교에서 온 말로, 우리 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을 일컫는다. 서술성모를 마고할미로 부르게 된 데서 노고단이란 지명이 유래했다. 노고단은 옛날 신라시대부터 지리산의 산신 서술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던 민속신앙의 영지(靈地)였다. 성모는 나라의 수호신이었고, 매년 봄, 가을에 국태민안과 풍년을 비는 제사를 이곳에서 지냈다. 후대에 성모는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인 위덕황후로 신앙되기도 했고, 남악사의 성모는 신라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신앙되기도 했다. 지리산은 결국 신라와 고려의 시조를 잉태했던 성지였던 것이다.

 

2. 노고단의 신화

지리산 산신 중 여신(여신)인 천왕봉의 마고할미는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노고(老姑)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 중 반야는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딸들을 한 명씩 전국 팔도로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가 돌아오지 않자,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을 거둔다. 갈기갈기 찢겨 날아간 옷은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갔고, 그것들이 반야봉의 풍란이 됐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고 한다.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반야봉 

1. 유래

지리산 3대 봉우리 중의 하나인 반야봉 가는 길과 백두대간 주능선이 이어지는 노루목으로 가는 길이 나눠진다. 반야봉(1,728m)은 지리산 산신인 천왕봉 마고할미와 혼인한 도사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라 하여 반야봉이라 부르게 됐다. 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달마대사의 머리를 닮았다고 한다.

 

2. 반야봉 러스스토리 

반야봉에는 남신(男神)의 상징인 반야와 천신의 딸이자 여신(女神)인 마야고(마고) 사이에 얽힌 러브 스토리가 전설로 내려온다.

마고는 사모하는 반야의 옷 한 벌을 지어놓고 반야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고는 고원에 핀 쇠별꽃이 바람에 일렁이며 물결칠 때마다 행여 반야가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착각에 사로잡혔다. 마고는 마침내 머리채를 나부끼며 신명나게 그 꽃잎 물결 속으로 반야의 옷을 든 채 달려갔다. 그리고 무엇을 잡을 듯 허우적거렸지만 그리운 반야는 보이질 않았다. 쇠별꽃의 움직임을 착각한 마고는 수치와 분노를 못 이겨 얼굴을 손바닥에 묻고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을 속인 쇠별꽃을 다시는 피지 못하게 하고, 반야의 옷은 갈기갈기 찢어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려버렸다. 또 매일 같이 얼굴을 비추어보던 산상의 연못은 신통력을 부려 메워 없애버렸다.

이 전설은 노고단의 마고할미와 연결시켜 이해하면 훨씬 재미있는 신화가 된다. 그 흔적은 지금도 지리산에 그대로 남아 전한다. 그녀가 메워버린 못을 누군가 천왕봉 밑 장터목에서 찾아내 ‘산희샘’이라 부르고, 찢겨져 흩어진 반야의 옷은 소나무 가지에 실오라기처럼 걸려 기생하는 풍란으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지리산 풍란을 ‘환란’이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는 전설도 있다.

 

천왕봉

1. 유래

지리산의 최고봉. 천주라는 뜻에서 유래. 천석의 거대한 종은 / 큰 것으로 치지 않으면 울리지 않듯 / 지리산의 기상인 천왕봉은 /

하늘이 울지라도 울리지 않는다. -남명 조식-

 

2. 두류산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거쳐 어느 덧 지리산까지 내려와, 천왕봉에서 그 끝을 맺는다. 지리산의 이름도 백두대간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불렀다. 이름 그대로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산이란 의미다.

 

2. 지리산 3대 봉우리

지리산권은 그 규모면에서도 남한에서 단연 최고다. 천왕봉?반야봉?노고단의 3대 주봉과 함께 해발 1,500m 이상의 큰 봉우리만도 10개가 넘는다. 최고봉 천왕봉(1,915m)을 비롯해서 반야봉(1,732m), 제석봉(1,806m), 촛대봉(1,704m), 명신봉(1,652m), 칠선봉(1,576m), 토끼봉(1,534m), 노고단(1,507m) 등 산봉우리들이 장장 45㎞에 이르는 주능선을 형성하며 첩첩산중을 이룬다.  

 

3.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
지리산은 우리 민족에게는 성산이자 어머니의 산이다. 왜 어머니의 산이라고 할까? 이에 대한 답은 성모신앙과 관련 있다. 성모신앙은 천왕성모라 하고, 마고(麻姑) 때부터 존재했다. 천왕성모는 천지창조의 주인인 율려(律呂)이고, 이 율려에 의해 우주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마고가 탄생한다. 이 마고신화가 우리 민족의 생성신화인 것이다. 단군?환인?환웅 이전의 이야기다. 마고성모는 지리산 천왕할매로 알려져 있는 천왕성모로, 마고시절부터 우리 민족을 보호해온 수호신이다. 따라서 우주창조의 어머니인 마고성모가 내려온 자리가 바로 천왕봉이고, 그 이름은 노고단에 남아 있다. 노고(老姑)는 늙은 할멈을 의미하고, 마고와 일맥상통한다. 노고단은 그래서 마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4. 천왕봉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일출을 보기 위해 살을 에는 듯한 그 추운 날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외에도 천왕성모는 박혁거세를 낳은 성모라는 설과 고려 태조 왕건을 낳은 위숙황후라는 설도 있으나, 이는 지리산 마고성모보다는 훨씬 이후의 이야기다. 어쨌든 지리산 천왕봉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있게 한 산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천왕봉 정상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란 정상비석이 있다. 이 내용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닌 것이다. 옛날에는 ‘萬古 天王峰 天鳴猶不鳴(만고 천왕봉 천명유불명)’이라 새겨진 청석표주와 지리산 산신령을 봉안하는 성모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명의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는 뜻을 그대로 쓴 것이다. 서산대사는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이라 했다. 그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지리 8경’ 중의 으뜸인 ‘천왕일출’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광경이다.